메아리

도덕(道德)이 허물어지면 나라가 허물어 진다

의성신문 2022. 9. 7. 10:07

장마와 더위가 번갈아 찾아들며 열대야와 폭양이 이어져서 사람을 괴롭히는 가운데 절서는 어김없이 변하여 가을철의 첫 절기 입추가 지나고, 8.15 광복절은 더위와 마지막 고비 말복이다. 거연히 가는 세월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오동일엽락(梧桐一葉落)에 천하장지추(天下將知秋) 다시 말해서 오동잎 한 잎 지는 것을 보고 세상에 가을이 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데는 세 가지 필요한 에너지가 있다.

첫째는 천기(天氣)이니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의 하층부를 가득히 채우고 있는 공기, 산소, 바람 따위가 그것이다. 만약에 그것이 없다면 사람은 짧은 순간에 질식하여 죽을 것이다.

둘째는 지기(地氣)이다. 우리는 삼시로 대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 곡식과 과일, 생선과 육류, 채소 등은 모두가 지기이다. 이는 천기처럼 금방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음식을 전폐하면 얼마 가지 못해서 생명은 끊어질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교육과 독서를 통하여 받아드리고 있는 정신적 에너지다. 사람이 일반 동물과 다른 것은 이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코로 천기를 받고 입으로 지기를 받으며 살아간다면 일반적 동물과 무엇이 다르랴. 사람은 정신적 교양을 함양하여 사람답게 살기 때문에 사람이라 하는 것이다.

사회는 모든 사람의 학교요 역사는 교과서요 경험은 스승이란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 일평생을 배우다가 죽는다고 해서 죽은 뒤의 그를 표시하는 명정(銘旌)이나 제사 지낼 때 신주나 지방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는 것은 일평생 배우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배우는 자에게 배우는 자는 깊은 산골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을 마시는 것과 같고, 배움을 그친 자에게 배우는 자는 웅덩이에 고여있는 썩은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요즘 우리 학교 교육은 지식교육과 정신 교육 두 가지로 대별 할 수 있다. 영어, 수학, 과학 등의 교육은 지식교육의 위주이다. 졸업 후의 취업이 주가 되니 이 세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가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윤리, 역사, 한문의학과는 지식공부요, 마음의 공부요, 몸 공부이며, 국가관을 확립시키는 공부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취업의 문이 좁기 때문에 이른바 배고픈 학문이다.

옛날 선비는 학식과 덕망이 높고 지역사회의 사표(師表)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선인들의 말씀 중에 양불교부지과(養不敎父之過), 교불엄사지타(敎不嚴師之惰)라 하였다. ‘키우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허물이요. 가르치기만 하고 엄하지 않는 것은 스승이 게으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요즘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은 지독지애(舐犢之愛)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교육한다. 이것은 어미 소가 송아지를 핥아주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동분서주하고 좌충우돌하는 각박한 세태에 태고적의 천치 같은 얘기를 늘어놓으니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기에 조심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비록 실행은 못하더라도 한 번쯤 씹어볼 내용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어느 사람은 교사(敎師)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학생의 사랑을 받고 학부형과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매사에 모범 되는 교사를 덕사(德師)라 칭하며, 학생지도를 요령 있게 하고 수업에 열중하여 똑소리 나게 가르쳐서 성적을 잘 올리는 교사를 경사(經師)라 칭한다. 직업의식이 투철하여 시각의 분초를 가리고 득실의 계산이 밝으며 속을 짓 하지 않는 교사를 업사(業師)라 칭하며, 상식 밖의 소행으로 학생의 장래를 그르치고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며 교육동요를 민망하게 하는 교사를 졸사(拙師)라 칭하였다.

사람은 정신이 죽는 것이 첫째 슬픔이요. 몸이 죽는 것은 다음이다. 나라는 역사가 죽는 것이 첫째 슬픔이요. 나라가 망하는 것은 다음이라 하였다. 비록 몸이 죽더라도 정신이 살아 있으면 그 후손은 일어나서 가업과 전통을 이어가고 나라를 중흥시킬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살아서 하루 세 그릇의 밥을 비우고 있지만 정신이 죽은 사람은 남의 하수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일상생활에는 물질적 자본이 있고 정신적 자본이 있다. 물질적 자본은 의식주(衣食住)를 해결하는 경제생활이요. 정신적 자본은 전통, 권위, 자존심, 지조를 살리는 것 등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상을 바로 잡고자 마음먹은 깨어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세상을 한탄하고 정부를 나무라고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정치의 옳고 그름을 호언장담하고 윗사람을 원망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런 일들만으로 세상이 바로 서지는 않는다. 콩알이 귀를 막아도 천둥과 우레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가랑잎이 눈을 가려도 드넓은 세상을 볼 수가 없다. 닫힌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새로운 생각을 가질 때이다. 사무처리를 잘하고 언변이 능통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유능한 공직자이다. 그것보다는 설자리 앉을 자리를 구별할 줄 알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릴 줄 알고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분별하며 예의염치(禮義廉恥)가 분명하고 국가관이 투철한 공직자가 더욱 훌륭한 공직자이다.

세상 모든 것 다변해도 도덕의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도덕의 위기는 군사적 위기보다 무섭고 경제적 위기보다 두렵다. 도덕이 허물어지면 사회가 혼란하고 사회가 혼란하면 나라가 허물어진다. 부강한 나라보다도 군사력이 강한 나라보다도 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가 바람직하다고 하였다. 숨기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 없고 미미한 것보다 더 잘 밝혀지는 것은 없나니라, 쓸때 없는 푸닥거리 그만하고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 중 한 구절을 적어 본다.

世與我而相違 세상이 나와 서로 맞지 않으니

復駕言兮焉求 다시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하겠는가

悅親戚而情話 친척들이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樂琴書而消憂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근심을 잊으리라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