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울창한 시냇가에서 지팡이 짚고 홀로 가노라면 서는 곳마다 구름이 해진 누더기 옷에서 일어나고, 대나무 창 아래에서 책을 베개 삼고 누우면 문득, 개인날에 달빛이 낡은 담요 위를 비추고 있다.
자연 속을 배회하니 자연과 일체가 되고, 달빛 아래 누워서 물아일체(物我一致)의 즐거움을 맛본다.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策扶老以流憩 늙은 몸 지팡이에 의지하고 아무 곳에서나 평안히 쉬고,
時矯首而遐觀 때때로 머리를 높이 들어 먼 곳을 바라보네
하고 읊었으며 방랑시인 김립(金笠)은 금강산의 도승(道僧)과 다음의 시구로 문답하였다.
朝登立石雲起足 아침에 입석봉 오르니 구름이 발 아래서 일어나고
暮飮黃泉月掛脣 저녁에 황천담 못물 마시니 달빛이 입술에 걸리네
송백이 우거진 골짜기를 구름 속으로 다니고, 죽창 달빛 아래 누워 자연을 감상하는 멋은 신선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색욕이 불꽃처럼 치솟을지라도 생각에 몸이 병든 때에 미치게 되면 곧 흥은 식은 재처럼 줄어들고, 명리가 엿처럼 달게 여겨지다가도 한번 생각이 죽는 처지에 이르게 되면, 곧 그 맛은 납덩이를 씹는 것 같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죽음을 근심하고 병을 우려한다면 가히 헛된 생각을 버리고, 도심(道心)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색욕이 불같이 일어날 때는 그 욕망 채우다가 병이 들었을 때를 생각하고, 명리를 탐하는 마음이 치솟을 때는 그 명리 때문에 죽음을 당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그러면 그 욕심은 사라지고 반대로 도심이 나타날 것이다.
후회서제(後悔噬臍)라는 명언이 있다.
이것은 일이 벌어진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향노루가 유명한 한약제인 사향을 얻으려는 포수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노루는 그 사향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되는 것을 후회하여 배꼽을 물어뜯은들 이미 때는 늦었다. 사향만 없었더라면 죽지 않을 터인데 이것이야말로 숙명적인 일이다.
참된 사람은 욕심을 눌러 잘못을 저지른 뒤에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말같이 쉬운 것이 아니다.
예기(禮記)의 한편에는 바른 도리를 행하고 욕심을 제어한다면 즐거워하되 어지럽지 않다고 했다. 드넓은 세상에 후회없이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모든 분야에서 자신이 아는 사이에 또는 모르는 사이에 과오를 저지르면서 살고 있다.
다투는 길은 좁으니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 저절로 한걸음만큼 넓고 평평해지며 향기 진하고 좋은 맛은 짧으니 일분을 맑고 담박하게 하면 저절로 일 분만큼 길어질 것이다.
공명을 추구하는 길은 좁으니 한걸음 뒤져야 안전하고 농염한 재미를 버리고 청담한 재미를 취해야 오래간다.
경(徑)은 지름길을 말한다. 논어의 옹야편(雍也篇)에 있는 이야기이다.
공자의 제자 자유(子遊)가 노(魯)나라의 무성(武城) 고을 수령이 되었다. 공자가 묻기를 “너는 이 고을에서 부릴만한 사람을 얻었느냐”하니, 자유가 대답하되 “예,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사람이 있아온데, 이 사람은 길을 가도 지름길을 가지 않고(行不間徑), 공무가 아니면 제 방에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이와같이 담대멸명은 강직하고 곧아서 지름길을 가는 일이 없었다. 군자대로행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삼경(三徑)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뜰 안에 있는 작은 세 길이란 뜻으로 은사(隱士)의 거처를 말하는 것이다. 옛날 한(漢)나라의 장후(蔣詡)가 자기 집의 뜰 안에 세 개의 길을 만들어 놓고 솔, 대, 국화를 심어 송경(松徑), 죽경(竹徑), 국경(菊徑)이라고 부른대서 유래한 말이다.
앞다투는 벼슬의 지름길에서 한 발짝 물러날 줄 알아야 하고, 너무 진한 맛만 찾지 말고 담백한 맛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고사이다.
바쁠 때 본성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할 때 정신을 맑게 길러야 하고, 죽을 때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살아 있을 때 사물의 참모습을 간파해야 한다. 결국 한가로울 때 마음을 수양해야 위급할 때 본성을 잃지 않고 평소에 사물을 바르게 간파해야 한다. 임종(臨終)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서(逸書)에서도 평안할 때 위급한 경우를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은 대비하는 것이고, 대비하면 근심이 없으니 감히 이것으로 규범을 삼으십시오. 그래서 거안사위(居安思危)하고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다. 곧 평안히 거처할 때 위험한 경우를 생각하고 먼저 대비하면 뒷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산속에 숨어 살면 명예나 굴욕이 없고, 도의가 정연한 길에는 인정의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세속을 등진 은둔생활에는 영욕이 없고, 도의가 행하여지는 길에는 속세의 변덕이 없다.
한서에서 말하기를
衣食足而知禮節 입고 먹는 것이 여유로우면 예절을 지킬 줄 알고
謙讓生而爭訟息 겸양하는 생활을 펼쳐 나가면 다툼과 송사가 없나니라
염량세태(炎涼世態)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더위와 추위를 말하는 것인데 권력을 잡았을 때는 ‘염’이요. 권력을 놓았을 때는 ‘량’으로 대변하였다.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면서 따르고 권력이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속세의 인정을 이른 것이다.
이것이 곧 염이부 한이기(炎而附 寒而棄)인 것이다.
속세와 관계가 깊으면 속세의 악에 깊이 빠져들어 권모술수와 간사한 교계만 늘어난다. 따라서 참된 사람은 속세의 악에 깊이 빠져들지 말고 차라리 소박하고 우직하게 일생을 살라고 선인들은 권장하였느니라.
태풍 “힌남노”가 전국을 휩쓸었으며 포항, 경주에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갔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오늘은 구름 없이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광명한 천지에 큰 재앙 없기를 간곡히 기도드린다.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황(鳳凰)새는 비동불서(非桐不棲) 비죽불식(非竹不食)이다 (0) | 2022.10.21 |
---|---|
의성 고을의 독행(篤行)과 열행(烈行) (1) | 2022.10.07 |
도덕(道德)이 허물어지면 나라가 허물어 진다 (0) | 2022.09.07 |
안동 무궁화 분재 축전을 참관하고 (0) | 2022.08.24 |
고등어(古都魚)와 들깻잎 (0) | 2022.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