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고명한 인사를 한자리에 모시고, 나라의 독립정신 표상인 무궁화 분재축전을 개최하는 자리에 초청을 받고 참여한 일이 있었다.
며칠 전은 여름철의 마지막 절기 대서(大暑)요. 일 년 중에 가장 덥다고 하는 중복(中伏)이 지났다. 그야말로 더위의 절정이다. 얼마 후면 가을철의 첫 절기 입추(立秋)이다.
옛날 어른들의 한시(漢詩)에
오동일엽락(梧桐一葉落) 오동잎 한 잎 지는 것을 보고
천하장지추(天下將知秋) 세상에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안다고 하였다
오늘 개최되는 무궁화 분재(盆栽) 축전은 참으로 그 뜻이 깊다. 이 꽃은 우리나라의 나라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만 가지 꽃 중에 분재로 사랑을 받는 것은 가을 향기 독특하게 풍기고 도연명(陶淵明)의 사랑을 받는 국화(菊花) 분재가 당연히 으뜸이요. 고상한 선비의 탁상(卓上) 위에서 그윽한 향기를 발산하며 고고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난초(蘭草)가 높은 대접을 받는다.
요즘은 그것의 집단재배로 분양하여 초야범부(草野凡夫)의 거실에도 난분이 몇 개씩 있으니 그 품격이 약간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의 주인공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國花)이기 때문에, 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더 더욱 사랑을 받고 있다. 흔히들 우리나라를 말할 때 근역(槿域), 근리(槿籬), 근화향(槿花鄕)이라는 별칭이 있다. 그러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아쉬움도 있다.
오늘 축전의 대상이 되는 안동 무궁화는 꽃이 비록 작다고 할지라도 한번 피면 이틀 사흘은 넉근히 간다고 하니 더욱 존경스럽다.
그 시 한 구절 가운데
금일근화락(今日槿花落) 오늘은 무궁화 꽃 지고
명조동수추(明朝桐樹秋) 내일 아침 오동잎에 가을이 온다는 뜻이다.
옛날의 풍류객(風流客)들은 오늘처럼 좋은 자리를 만나면 반주를 곁들여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술기가 오르면 여흥이 발동된다. 시를 읊으며 창(唱)도하고 전통가요도 부르며 때로는 사촌(四寸)에게 논 사주는 겉보리 장창도 쓰고 이웃 동네의 과부들 바람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장담하고도 뒷말 날까 입단속 시키는 일도 없이 순박한 세상도 있었다.
돌아보면 요즘 세상은 너무도 각박한 세태라 약간은 아쉬움도 있다. 자고로 모임 자리는 마을마다 고을마다 친소 따라 계모임도 있고 동경(同庚) 또는 동호인도 있었는데 모임 자리는 자연히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근세의 모임 자리는 정확히 시간이 되어서 모이고 사안을 토론하고 끝이 나면 식사나 술자리가 있지마는 숟가락을 놓으면 온다간다 말도 없이 자리를 떠나 버린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 세대는 후인들에게 여유로운 정신을 물려주는 기회가 되었으면 조금은 뜯뜯한 바람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다.
공연한 넋두리를 하다가 무궁화 축전 이야기는 하지도 못했다. 그날은 7. 28일이다. 배혜지 기상예보관이 매일 같이 비가 온다고 예보하였으나 가뭄은 더욱 심하여 길뚝의 잡초가 시들고 있는 가운데 오늘도 곳에 따라 소나기가 온다고 하였으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행사장 안 “예움더 마을”에 도착할 때는 소나기는 아닐지라도 제법 굵은 빗줄기가 차분하게 내린다. 우산 준비도 없는 일행이 건물 입구에 차를 세우고 가까스로 입장하였다. 현장에는 누구누구의 거명을 할 수 없이 저명인사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으니 아마 30여 명은 됨직하다.
이 행사의 막후 작업을 주관하며 안동의 산증인으로 널리 알려진 이건구 발전 연구소장의 인사말과 함께 장내에 참여하신 모든분들을 유머 있게 소개를 하고 우리 일행도 듣기 좋게 소개하였다.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서 약간은 겸연쩍었다.
저녁 식사가 와인과 함께 조촐하게 진행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는지라 정담을 나누고 소회도 개진하였다. 오후7:30분에 열리는 개막식에 참석을 위해 안동의 명소 월영교(月影橋) 주변 안동민속박물관에 도착할 때는 시간의 여유가 있는지라 월영교 주변을 산책하였다. 아침 비가 개이고 물보라가 얇게 깔려 절경을 이루고 인공분수로 물보라를 조성하니 천작(天作)에 인작(人作)을 곁들여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어린이의 손을 잡고 부부간에 산책하는 청춘 남녀들이 거리를 채우고 커피와 음료수를 파는 잡상인들도 가득하였다.
곧 행사가 진행된다. 민홍기 회장의 인사말과 권기창 시장의 축사가 있었으며 몇 분의 축전 낭독으로 간략하게 끝을 맺고 안동의 시인 낙우 김경숙이 자작시 “무궁화 꽃이 피었다”를 맑은 음성으로 낭송하였다. 이어서 권용일 성악가의 가곡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으며 60대의 정숙한 여인들 합창단이 같은 복색으로 꾸며서 “무궁화를 노래하다”를 합창으로 불러서 장내의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불빛이 휘황한 거리에서 모두들 분재 전시장에 입장하였다. 제법 넓은 공간에 수백 개의 잘 다듬어진 분재가 진열되어 있었으며 일반적인 울타리 무궁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 분재의 시원은 전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 심경구 교수가 예안(禮安)의 유림 선비들께서 나라 독립을 염원하고 일제 강점기 당시 예안향교에 심었던 재래종 무궁화를 분양받고 채취하여 접목변이(接木變異)시켜 육종방법에 의해 선발된 신품종으로서 1999년 7월 19일 한국 무궁화 품종 명명(命名)위원회에서 안동무궁화로 이름하였다.
안동무궁화는 꽃이 작은 편이나 활짝 피면 꽃잎 사이가 벌어지고 꽃잎의 가장자리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꽃에 비하면 단심은 큰 편이고 단심선은 보통이다. 잎은 모수(母樹)가 작고 두터우며 생육형이 지극히 왜성형(矮性型)이라 현실의 주거문화에 알맞게 분재로 기르기에 적합하다. 마디의 사이는 짧고 일반 품종에 비해 매우 적으며 5년생인 경우라고 하나 1m미만이다. 나무당 개화 수가 100여송이 이상 핀다고 한다. 잎이 두터워 진딧물에 강하고 그 형태는 백단심에 홑꽃으로 재래품종의 ½정도의 작은 꽃이며 일반 무궁화보다 장수하는 특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무궁화는 땅도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 심어도 잘 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 나무처럼 천하게 가꾸면 천하게 자라고 군자처럼 귀하게 가꾸면 군자처럼 자라는 것이 무궁화의 특성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우리나라를 군자국(君子國)이라 별칭 하였다. 풍속이 아름답고 예의가 바르다 하여 당서(唐書)에 신라(新羅)를 군자국이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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