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제732호 행정동우회 울진여행

의성신문 2022. 6. 24. 10:07

돌아보면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거연(居然)히도 흘러갔다. 모두들 청년 시절에 지방 공직에 몸을 담고 작게는 자신을 위해서 크게는 나라를 위해서 낮에는 세금징수, 매상 독려, 추심경(秋深耕) 권장 등, 혁명과업 완수를 위해 시도 때도 없는 반상회지도, 새마을 사업추진 등 혁명공약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길 가면서도 외며 밤에는 돌아와서 희미한 촛불 밑에서 야근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간다.

그 당시에 남은 일화들이 그때는 고생이였는데 지금은 하나의 추억이다. 그때의 동지들이 모여서 조직된 행정동우회는 지금도 건전하게 운영되고, 모두들 열심히 참여하여 옛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해마다 한두번씩 소풍을 하였는데, 코로나19의 괴질 때문에 2년간 중단되었다가 3년 만에 열렸다. 그동안 이마에는 잔주름이 더 하였지만 그래도 건강한 모습이다.

금년은 69일로 일정을 잡고 종합운동장에 집결하였다. 김주수 군수님의 환송 인사를 듣고 이해우 회장님의 인사말과 당일의 일정 소개를 들으면서 이마가 훤히 트인 대형버스는 아침 공기를 가르며 유연하게 달린다.

목적지는 동해안의 울진이요. 삼척이다.

첫 번째로 차가 머무른 곳은 성유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푸른 물결을 한눈에 굽어보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망양정(望洋亭)이다. 여기는 관동팔경의 제일루라는 숙종대왕의 시판이 걸려있고 세종대왕과 함께 높이 칭송받는 정조대왕의 글도 걸려있다. 모두들 머리를 숙였다. 비록 글은 걸려있지 않지만 많은 시인묵객(詩人墨客)의 사랑을 받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서 어줍지 못한 한시 한 수를 읊어 보지만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생각하면 웃음거리도 어지러운 세상의 활력소가 되리라.

 

登望洋亭 망양정에 올라서

蔚珍勝地此日遊 울진이라 좋은 경치 오늘날 유람하니

高臺登亭望洋洲 높은데 정자에 올라 큰 바다 바라보네

滄桑世波幾萬劫 창상 세월 흘러서 몇 만겁인가

山海無常歲千秋 무상한 산과 바다, 세월은 천추였네

風蕭蕭兮春日暢 맑은 바람 불어서 봄 날씨 화창하고

雲飛飛兮白鷖浮 구름은 날고 날아 힌 갈매기 뜨네

明陵聖主下賜額 숙종대왕 어진 임금 하사한 편액(明陵:경기도 고양에 있는 숙종대왕의 능)

關東八景第一樓 관동의 팔경 중에 제일이라 하였다네

 

선인(先人)들이 말씀하기를 유산(遊山)여 독서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글 읽는 효과와 같다는 말이다. 사회는 모든 사람의 학교요. 역사는 모든 사람의 교과서요. 경험은 모든 사람의 스승이라 하였다.

오늘은 학교와 교과서와 스승을 함께 하면서 독서 하는 날이다. 매우 뜻깊은 날이다. 멀지 않은 곳의 왕피천 케이블카의 현장으로 옮겼다. 이곳은 1400m의 하늘길로 이것을 탑승하면 동해를 바라보며 왕피천과 바다를 굽어보는 경관을 볼 수 있으며 해맞이공원도 관광할 수 있어 일품이고 민물과 바닷물이 합수되는 곳이라 물고기의 노는 모양도 눈에 잡힐 것만 같다. 회장님과 총무의 주선으로 먹을거리가 비닐봉지에 가득히 들었지만 즐겨 먹지 않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곳이 죽변항이다. 7호 회식당의 2층에는 푸짐한 음식과 맥주, 소주, 음료수 등이 즐비하게 차려있다. 회원들은 나이 따라 친소 따라 41조로 둘러앉고 약간의 시장끼가 있던 참이라 넉넉한 안주에 반주를 곁들여 한순배 돌고 나니 자연히 장내는 시끌시끌 분주하였다. 원로와 회장님의 건배사가 있으며 전 회원이 위하여를 외치고 분위기는 한층 더 화합하였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한 곳이 죽변 등대 일원에서 후정해수욕장까지 왕복 4.8Km로 죽변해안스카이레일은 푸른 바다를 조망하며 해안절벽을 끼고 달려 청정한 동해의 절경을 즐기는 울진의 관광자원이다. 한 번쯤 볼만한 곳이다.

다음에 들린 곳은 민물고기 생태체험관이다. 이곳은 사라져가는 토종민물고기의 유전자원보전을 위해 고유 및 외래어종이 전시되어있어 어족보존의 학술연구자료가 된다. 하지만 유리관 속의 치어가 헤엄치는 것이 고작이니 생태체험학습장이라하나 우리 일행 같은 일반 관광객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다음 들린 곳은 죽변면 봉화길15에 위치한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이다. 여기에는 국보 242호의 효율적인 보존관리를 위하여 건립하였으며 실내에는 봉평 신라비석 실물 및 삼국시대의 주요 석비모형이 전시되었다. 금석학의 계보와 시대별 비석의 형식 변화와 한자 서체와 한글 창제 등을 소개하고 있으나 힛끔힛끔한 화강석에 천각(淺刻)으로 각자해서 자획을 구별할 수 없으며 많은 예산으로 조성하였으나 보는 사람들은 실망할 뿐이다. 주변에는 조선 시대의 수령(守令)의 선정비가 열 지어 서 있다. 군수 현령 현감 관찰사, 순찰사 찰방(察訪)의 선정비(善政碑), 불망비(不忘碑) 등이다.

선정비불망비는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학정(虐政) 가정(苛政)의 표상인 경우도 허다하였다. 악질 수령들은 이방(吏房)과 결탁하여 백성의 고혈을 빨아서 챙기고 자신이 이임하기 전에 칙근 이방에게 자금을 충분히 공급하고 내가 떠난 뒤에 비를 세우게 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전임 고을에는 선정비가 서 있고 후임 고을에서 학정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고을의 지방세가 강한 곳에는 선정비가 없다. 우리의 이웃 고을 안동에는 선정비불망비가 전혀 없다. 지방의 토착민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울진여행을 마친다.

울진은 옛날에 우진야(于珍也)라 불리던 곳으로 강원도에 속해있다가 1963년 경상북도에 편입되었으며 지방의 다수 토성은 전(), (), () 삼성이다. 울진에는 예언가로 지금까지 잘 알려진 남사고(南師古)의 고향이다. 그는 의령(宜寧)남씨이며 호는 격암(格庵)이다. 천문, 지리, 역학, 풍수, 복서, 상법 등에 통달한 예언가로 유명하다. 그는 동서분당(東西分黨)과 임진왜란을 예언하였으며 지금도 격암유록(格庵遺錄)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세간에는 허다하다고 한다. 다가오는 21일 하지이다. 장장춘일 하루해는 지루하게 길기도 하다.

 

202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