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길어 인적이 고요한데 홀로 앉아 본심을 관찰하면 비로소 허망한 생각이 사라지고 진실이 홀로 드러남을 깨닫게 되니 매양 이런 가운데 그 진리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났어도 허망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음을 깨닫는다면 다만 이 가운데 큰 부끄러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뢰구적(萬籟俱寂)의 한밤중에 스스로 본심을 살피면 허망한 생각은 사라지고 진실이 나타나 진리를 깨우쳐 희열을 만끽할 수 있다.
맹자(孟子)께서는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했다. 이것을 성선설(性善說)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의 비슷한 시대의 순자(荀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하고 맹자와 정반대의 학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람의 천성은 누구나 다 절대로 착한 것인지 또는 악한 것인지 한쪽으로 결론짓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맹자나 순자는 같은 입장을 취하는 점도 있다. 곧 후천적인 교육의 힘으로 착한 천성을 영구히 보존하거나 악한 천성을 바로 잡아 착한 경지로 나아가게 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맹자에 의하면 사람의 천성은 착하나 주위 환경의 오염으로 악하게 되는 것을 교육의 힘으로 바로잡아 선(善)의 경지로 나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는 사람의 천성을 착한 것으로 보아 고요한 밤중에 조용히 사색에 잠겨 진리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지극한 은총 속에서도 재앙은 싹틀 수 있다. 그러므로 득의 하였을 때 모름지기 머리를 돌려라. 실패한 뒤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문득 손 떼고 방심하지 말 것이다. 윗사람의 신의를 얻어 득의 할 때 물러날 준비를 하고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나간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멈출 줄 알면 위험이 없다(知止不殆)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말을 타면 경마잡이를 두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옛날 초(楚)한(漢) 시대의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韓信)은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의 신하 중 삼걸(三傑)이었다. 세 사람이 합심 진력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 장량은 속세의 미련을 두지 않고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신선도(神仙道)를 닦으려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한신은 천하통일의 큰 몫을 담당했던 까닭에 제후(諸侯)로 봉해졌다. 처음에는 제왕(帝王) 초왕(楚王)을 거쳐 회음후(淮陰侯)까지 되었으나 나중에 역모로 죽임을 당했다. 그가 모반(謀反)에 걸려 체포되었을 때 한 말이 유명하여 지금도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교활한 토끼가 죽음에 사냥개는 삶아 먹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메 활은 감추어 둔다”(狡兔死, 走狗烹, 高鳥盡, 良弓藏) 이라는 말이 있다. 곧 적을 평정하고 나니 사냥개와 좋은 활은 소용 없음으로 자기와 같은 사람은 없애 버린다는 말이다.
누구나 만족할 때 물러설 줄 모르고 조금 더 행복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마침내는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는 예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만족할 때 물러서는 방법을 배워야 함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명아주 국을 먹고 비름나물로 창자를 달래는 사람은 얼음처럼 맑고 옥같이 깨끗함이 있지만 좋은 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는 사람은 굽실거리며 아첨하는 시늉도 달게 여긴다. 대체로 지조는 청렴결백함으로써 분명해지고 절개는 부귀를 탐내다가 잃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 중에는 깨끗한 사람이 많고 부귀한 사람은 비굴한 점이 많다. 따라서 지조와 절개는 청빈한데서 지켜지고 부귀해지면 잃게 되는 것이다.
논어의 이인편(里仁)에서 “선비가 진리탐구에 뜻을 두고 악의악식(惡衣惡食)을 부끄러워한다면 그와 함께 의론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그의 제자 안회(顔回)를 평하여 “훌륭하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쪽박의 물로 빈천하게 살게 되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렇게 살면서도 그 즐거움을 변하지 않는 도다.” 하였다. 곧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를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희성(稀姓)이라 할 수 있는 목천상씨(木川尙氏)가 있다. 이들은 단일본이고 그 수도 매우 적어 보학에 밝은 사람이 아니면 상씨를 잘 알지 못한다. 목천은 지금 독립기념관이 있는 충남 천안지역에 속해있다.
조선조 중기의 명신 상진(尙震,1493~1564)은 자는 기부(起夫), 호는 법허정(法虛亭)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에 발탁되고 성절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승지참판 대사간 등 여러 벼슬을 거쳐 좌우의정을 지나 영의정을 역임하고 영중추부사에 이르렀다가 궤장(几杖)을 받고 퇴임한 국조명상이다. 그는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인품이 후덕하여 조야(朝野)의 신망을 받았고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남의 장단점을 말하는 일이 없었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간사한 자를 논박하여 공격하고 세상 풍파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또한 남의 잘못된 점 듣기를 싫어하고 들으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아 용서할 길을 찾았고 그의 장점을 들추어주었으며 남의 착한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칭찬해 주었다.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상진은 그를 가엾이 여겨 훔친 물건을 그대로 도둑에게 주었다고 한다.
명종(明宗) 당시 점술가 홍계관(洪係寬)이 예언가로 유명하여 그의 말이 틀리는 일이 없었다. 그가 상진 정승의 사주를 풀어준 일이 있었다. 그는 죽을 날을 예언해 주었다. 상 정승은 틀림없는 사실로 받아들여 죽은 뒤에 쓸 물건을 준비해 놓고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 죽지 않았다. 홍계관 점술가는 상진대감의 집으로 찾아갔다. 상진이 하는 말이 “나는 내 명이 다하는 줄 알았는데 어찌 자네 말이 이번에는 맞지 않는가.” 물었다. 홍계관이 말하기를 “저가 온 정성을 다해 대감의 수명을 보았는데 틀림 없는 줄 알았습니다. 혹시라도 남모르게 쌓은 공덕으로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데 대감은 덕을 쌓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상 정승 하는 말이 “아! 내가 이런 일이 있었지, 옛날 수찬(修撰)이라는 말직에 있을 때 길에서 붉은 보자기가 있기에 주워서 집에 와 풀어보니 그 속에 황금 술잔이 한 쌍이 들어있기에 즉시 대문에다가 아무 날 어디에서 물건을 잃은 사람은 나를 찾아오라고 방을 부쳤다. 이튿날 한사람이 찾아왔다. “소인은 대전(大殿) 별감(別監) 입니다. 저의 집 아이의 혼인이 있어서 그 금 술잔을 몰래 가져다가 쓰고 그 자리에 돌려놓으려고 하였는데 그것을 저가 부주의로 잃어버렸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대감께서는 그것을 주운 것입니다.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하고 용서를 구하기에 나는 그것을 돌려주고 비밀에 부친 바 있다.”고 하였다. 홍계관은 무릎을 치고 대감은 그 일로 인해서 수명이 늘어난 것이라고 하였다. 상진은 그 후 15년을 더 살고 74세에 죽었으며 나라에서 성안(成安)이란 시호를 내렸다. 이 말은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에 기록되었다.
내가 남에게 베푼 은혜는 잊지 않으면 안 되고, 내가 남에게 받은 은혜는 잊어서는 안 된다. 한번 새겨볼 이야기이다.
2022. 3.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30호 전거지복(前車之覆)은 후거지계(後車之戒)라 (0) | 2022.05.24 |
---|---|
제729호 가정의 달에 생각나는 정다산 시 독소(丁茶山 詩 獨笑) (0) | 2022.05.10 |
제727호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0) | 2022.04.08 |
제726호 도야(陶冶)와 훈도(薰陶) (0) | 2022.03.25 |
제725호 훌륭한 장사꾼은 좋은 상품을 밖에 진열하지 않는다. (0) | 2022.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