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美學 Ⅱ

‘國民安全의 날’에 부친다

의성신문 2017. 4. 17. 15:23



‘國民安全의 날’에 부친다


4월 16일은 ‘국민안전(國民安全)의 날’이다. 이 날은 2015년 세월호(世越號) 침몰참사 1주년을 맞으면서 이와 같은 대형사고(大型事故)를 미연에 예방하고, 국민 전체가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제정한 날이다. 이와 함께 소방방재청ㆍ해양경찰청, 그리고 행정자치부의 안전관리본부를 통합한 국민안전처(國民安全處)도 새로이 신설되었다.


세월호 침몰참사가 있었던 해로부터 3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날의 아픈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의 참사로 304명(사망과 실종)의 아까운 생명을 잃었는데,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세월호의 참사는 선장(船長)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의식(安全意識)만 있었어도 피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데에 큰 아쉬움을 남겼다. 잘 알려진 대로 세월호는 당초 2014년 4월 15일 오후 6시 30분에 인천항(仁川港)을 출발해서 그 다음 날 오전 8시에 제주항(濟州港)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기상(氣象) 상태가 좋지 않아서 출발 예정시각보다 2시간 30분 후에 출발하였다. 이처럼 2시간 30분이나 늦게 출발했으면서도 제주항 도착시각을 무리하게 맞추기 위하여 섬들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직선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디 그 뿐이었던가.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된 여객선(旅客船)인데, (주)청해진해운(淸海鎭海運)이 2012년에 일본 해운사(海運社)로부터 들여오면서 리모델링을 해서 승선(乘船) 정원을 840명에서 956명으로 늘렸다고 한다. 이는 마치 1995년 삼풍백화점(三豊百貨店) 붕괴원인을 떠올리게 한다. 삼풍백화점의 붕괴원인은 매장(賣場)을 늘리기 위한 불법증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현상은 모두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안전’(安全)을 팽개친 탓이었다. 결국 안전을 팽개친 결과가 귀한 인명(人命)을 앗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조류(潮流)가 빠르기로 두 번째 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날 이 곳을 운항한 사람은 입사한 지 4개월 밖에 안 되는 3등 항해사(航海士)였으며, 이준석 선장은 조타실(操舵室)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누구 하나 승객(乘客)의 안전을 위한 근무수칙을 지킨 사람이 없었다. 또, 규정상 화물(貨物)은 987톤만을 실어야 하는데, 규정의 4배가 넘는 3,608톤을 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미루어보면, 세월호 침몰참사는 한 마디로 ‘안전’을 저버린 데서 비롯된 재앙(災殃)이었다고 할 수 밖에 다른 말이 필요치 않다.


또, 황당했던 것은 여객선이 ‘쾅’ 하는 충격을 받고 기울기 시작하는 상황에 선내(船內) 방송에서 “승객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반복해서 안내했다고 한다. 이것은 생존자의 증언이었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되기 시작한 때로부터 1시간이나 지난 오전 10시경에 “침몰이 임박했으니 선박에서 탈출하라”고 방송했다고 하는데, 이 때는 이미 여객선이 50도 이상 기운 상태였으며 전기(電氣)가 꺼진 뒤여서 선실(船室)이 깜깜해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전혀 안내해주지 않았다고 하니, 이미 대형사고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 다름 없었다.

 

安全守則이 基本이다

  

매일 아침 조간신문을 펴들면 대형사고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를 하나 하나 짚어나가다가 보면 끝이 없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고가 2016년 6월 1일에 있었던 경기도 남양주시(南楊州市) 지하철(地下鐵) 공사장 폭발사고이다. 이 사고로 4명의 사망자와 10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런데, 이 공사장에서는 폭발 가능성이 많은 작업을 하면서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재해예방 안전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용접(鎔接)ㆍ용단(鎔斷) 작업시에는 발생되는 불티가 3,000도가 넘는 높은 열을 지니고 있으며, 수천 개의 불티가 10여m 이상을 틔어나기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고 한다. 그런데, 공사장에는 가스누출경보기와 환기구도 없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2015년 3월에 있었던 강화(江華) 캠핑장 화재사고도 연소(燃燒)가 잘 되는 소재로 만든 텐트로 말미암아 피해를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고는 한 가족이 잠 자고 있던 텐트에서 불이 나면서 옆 텐트로 불이 번저 순식간에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참사였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2014년 10월의 성남시(城南市) 분당 환풍구 붕괴사고도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사고였다. 이 사고는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에서 인기 걸그룹 포미닛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빚어졌는데, 관람객이 환풍구 위에서 공연을 보던 중 환풍기 철제 덮개가 무너지면서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ㆍ경상을 입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들 사고의 원인은 하나 같이 기본인 안전수칙(安全守則)을 외면한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안전(安全)을 위협하는 것이 어디 이 뿐인가. 요즈음에는 나날이 택배(宅配)가 늘어나면서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事故)가 빈발하고 있다. 운전자의 유니폼에 '후딱 배달!’이라거나, '하이 퀵!'이라고 쓴 택배용 오토바이가 무법천지(無法天地)로 달리고 있다. 더 빨리 가기 위해서 지그재그로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린다. 더러는 인도(人道)로도 달린다. 달리다가 ‘행인(行人)을 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속셈인 듯 하다. 참으로 위험한 세상이다.


문득, 필자가 이 글을 쓰면서 산악인(山嶽人) 엄홍길(嚴弘吉)을 떠올린다. 엄홍길은 히말라야(Himalaya) 8,000m급 봉우리 16개를 등정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산악인이다. 그런데, 그는 2004년 히말라야 등정 중 동료 산악인 박무택을 잃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기억이다. 2005년, 엄홍길은 ‘휴먼원정대’를 조직하여 박무택의 시신(屍身)을 수습하기 위하여 그 곳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시신을 운구해 내려오던 길에 눈보라를 만났다. 대원(隊員)들의 위험 앞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더 이상 욕심을 낼 수 없었다. 엄홍길은 햇볕이 잘 드는 동쪽 능선(稜線)에 시신을 옮겨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택아, 너가 좋아하는 이 산에 너를 묻고 간다. 편히 잠들어라”라고 기도하면서, 자리를 떴다. 이것이 무엇인가. 엄홍길 대장(隊長)은 사랑하는 무택이를 그 곳에 묻고 싶었겠는가. 대원들의 ‘안전’을 생각한 그의 결단이었다. 그렇다. 안전사고는 언제 일어날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