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부터 5세기 후반 중앙집권적 국가체계를 형성하기 이전에는 지방마다 서로 간 비슷한 음악 문화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며, 상고 사회 제천의식에 필요한 삼국 공통의 가무(歌舞)를 향악(鄕樂)의 뿌리로 삼아 음악 문화를 전승하였을 것이다.
단지, 지리적인 여건에 따라 대외적인 문화교류가 서로 달라서 조금씩 차이가 날 뿐이었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초기 단계에서는 종교적 제천의식(祭天儀式)의 하나로서 출발하였던 것이다.
조문국은 과거 신라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고구려와 백제로 향하는 결절지에 있었다. 또한 의성의 옛 이름 문소(聞韶)라는 지명이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 韶(舜임금의 음악)를 들으시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셨다.”라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子在齋聞韶)에서 인용한 것이다. 여건도 좋았고 관심도 많았다. 고대사회 의성 지방의 음악과 춤에 대하여 알아보자.
삼국지(三國志) 등 중국 정사와 출토유물로 살펴보는 춤과 음악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진한(辰韓)의 노인들은 대대(代代)로 전(傳)하기를, “(우리들은) 옛날 망명인으로 진(秦)나라의 고역(苦役)를 피하여 한국(韓國)으로 왔는데, 마한(馬韓)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 진한(辰韓)은 처음에는 6국(國)이던 것이 차츰 12국(國)으로 나누어졌다. … 풍습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기 좋아한다. 비파(瑟)가 있는데 그 모양은 축(筑)과 같고 연주하는 음곡(音曲)도 있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진한(辰韓)의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 모든 작은 읍에는 각각 거수(渠帥)가 있으니, 강대한 자를 신지(臣智)라 하고, 그다음은 검측(儉側), 그다음은 번지(樊秖), 그다음은 살해(殺奚), 그다음은 읍차(邑借)가 있다. … 그들의 풍속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 마시고 비파(瑟) 뜯기를 좋아한다.”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불리는『삼국지(三國志)』와『후한서(後漢書)』 그리고『진서(晉書)』와『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동이전(東夷傳)에 위의 기록이 있다. 거수(渠帥)는 진한 각각의 국(國)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신지(臣智)에서 읍차(邑借)까지 5단계의 차등이 있었다. 진한의 12국(國)에서는 보이지는 않았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등장하는 조문국 또한 진한지역에 있다. 따라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였을 것이다. 그 당시의 의례 행위를 살펴본다면 대국(大國)과 소국(小國) 어느 국(國)에 속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며, 연주수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의 장송 의례 또한 신라 고분의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 고분군의 동단에 있는 모지산(莫知山) 정상부 학미리 1호분 내부에서 불의 정화 의례가 확인되었다. 청동령과 함께 출토된 철제의 솥 안에는 불에 달구어져 붉게 변색한 자갈돌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신라와 가야에는 없는 북방 민족의 습속이다.
순장 양상과 함께 독특하고 다양한 제사 형식이 있었다. 고분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여러 형태의 의례 행위는 수많은 동물 뼈를 남겼다. 금은 위세품처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호석 아래에서 4마리의 온전한 개 뼈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봉토의 외곽에서 온전한 개체의 고양이 뼈(성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고분에서 고양이 뼈가 확인된 것은 유일한 사례이다. 장송 의례의 마지막 절차로 개와 고양이를 이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멧돼지나 소, 말의 이빨이나 꿩과 같은 조류, 상어와 돔과 복어 등 어류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어류나 조류는 봉헌된 음식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발굴된 많은 토기 가운데 장경호 1점의 내부에서 많은 양의 쥐 뼈가 나왔다. 그 수와 특정한 장경호에서 발견된 점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들어간 것은 아닌 듯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탑리Ⅰ곽에서 출토된 금동관이 있다. 3개 입식의 가장자리를 연속하여 오린 뒤, 5∼6번 연속하여 비틀어 마치 새의 깃털(羽毛形)처럼 만든 것이다. 긴 막대와 같은 입식은 새의 깃털을, 나뭇잎 모양은 넓게 볼 때 나무를 상징한다. 고구려 금속관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에 의해 신라에서 제작한 뒤 조문국의 왕에게 사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에 장송 의례 때 영혼을 날아오르게 하는 매개체로 새의 깃털(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을 사용하는 독특한 풍습이 기술되어 있다. 소국에서 행할 의례 행위는 아닐 것이다.
『신라사초』를 살펴보면, 처음 조문국을 세운 이는 예왕(濊王)이다. 후한서 동이열전에 한 무제 원삭 원년(元朔 元年, B.C. 128) 예군(濊君) 남려(南閭) 등이 우거(右渠)1)를 배반하고 요동에 귀속하게 된다. 진작(晉灼)의 주석은 “예(濊) 자는 옛날의 예(穢) 자이다.”라고 하였으며, 광개토대왕릉비에는 ‘新來韓穢 沙水城…舍蔦城 韓穢’라는 기록이 있다. 한강과 임진강 일대에서는 한족과 예족이 어울려 살았던 것이다. 조문국과 같이 진한 지역이던 영일 지방(신광면)에서는 서진대(西晉代)의 인수(印綬)로 예족(濊族)의 군장(君長)에 지급한 ‘진솔선예백장(晉率善穢佰長)’이 출토되었다. 또한 어류들이 의성 금성면 고분군에서 출토된 사례로 볼 때 조문국 또한 이들 지역과 교류하였을 것이다. 예왕 남려의 후손이 어떠한 사유로 정착하게 되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이들 무리 중의 일부가 남으로 내려와 토착민과 결합하였을 것이다. 예(濊)에서는 10월에 무천(舞天)이란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열렸다. 그들 가무(歌舞)가 조문국으로 전승되지 않았을까? 교통의 요지에 있었기에 북방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조문국에는 가야금보다 이른 시기 조문금(召文琴)이 있었다.
1589년(선조 22) 7월 11일 56세의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이 고장을 지나며 쓴 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의 일기에 당시 채록한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삼한 때에 거느리던 여러 나라가 혹 50개 이거나 70개였는데, 바둑판처럼 펼쳐있고 별처럼 널려있었으니 땅의 경계가 접하고, 땅이 연이어 있어 그 땅의 크기가 커봤자 사방 100리도 되지 않았었다.
조문국은 문소현 동남쪽 빙산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도 궁궐의 터가 아직 남아있다. 거친 숲과 우거진 수풀 가운데 무덤이 겹겹이 있는데 모두 당시1) 군왕의 무덤이다.
밭두둑 사이에 꽃밭이 있어서 모란2)이 멋대로 자라 해마다 꽃이 피고 지는데 농부들이 가리키며 말하기를 그 당시 임금이 꽃을 감상3)하던 곳이라고 하였다. 밭을 가는 농부의 쟁기가 땅을 갈다가 때로 돌에 부딪히면 땅속에서 음악 소리가 난다고 하였다.
이것은 잘 모르겠지만 나라가 망할 무렵 영인(伶人 음악을 맡은 벼슬아치)들이 악기를 그 아래에 묻어 두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라가 망한 뒤 남은 원통함이 황천 아래에 맺혀 풀리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촌 늙은이가 꿈에서 한 사람을 보았는데, 수염과 머리털이 하얗고 옷이 풍성하면서 아름다웠다. 그가 시를 지어 노인에게 주었는데
金陵往事與誰論 금릉의 지나간 일 누구와 더불어 말해볼까
千載猶存敬德墳 천년 세월에도 경덕왕의 무덤은 남아 있네
飛鳳曲亡人不見 비봉곡은 없어지고 사람은 볼 수 없는데
召文琴在杳堪聞 조문금 소리 아득하니 들리지가 않는구나
라는 내용이었다.
노인이 놀라 깨어나서는 사람들에게 외워 전하였는데, 노인은 글을 한자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비봉(飛鳳)은 산 이름으로 조문국의 서남쪽에 있다. 아! 오래된 도읍의 남은 터가 비록 수천 년이나 흘렀지만 사람의 정신4)은 오래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간혹 꿈속5)에서 서로 감응하는 수가 있으니 이른바 꿈속의 노인이라는 것은 아마도 당시 인물6)의 정령일 것이다.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역시 그의 문집(文集)에서 교남(嶠南)을 기행(紀行)하며 초전 경덕왕릉(草田 景德王陵)이란 시(詩) 한 수를 남겼다.
이날 초전의 김 상사 집에 도착하였다. 주인의 말이, 초전은 옛날 조문국으로 비봉산 아래에 있었으며 경덕왕의 무덤이 있다고 하였다. 선조 때의 인물인 초간 권문해의 문집 내용 가운데 조문국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경덕왕릉은 금성산 밑에 있는데 평평해져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한 농부가 꿈을 꾸었는데, 한 노인이 자신이 대왕이라고 하면서 시 한 절구를 지어 주었는데,
飛鳳曲終山獨在 비봉곡을 마쳤건만 산은 홀로 남았고
召文琴古杳難聞 조문금은 옛적에 아득해져 듣기 어렵네
金陵往事憑誰問 금릉의 지나간 일 누구에게 물어볼꼬
千載猶存景德墳 천년 세월에도 경덕왕 무덤은 아직 남아 있구나
라는 내용이었다. 농부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인데, 능히 이 시를 외고 있었으며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았다. 현관(縣官, 현령)이 관영(官營)에 보고하자 관영에서는 조정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특명을 내려 무덤을 지키고 보호하게 하고 세시(歲時)에 향을 하사하여 제사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문소군(聞韶郡)은 본래 조문국(召文國)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하였다. 다른 시군과는 달리 본래 조문국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위 일기와 기행문에서 조문금이란 악기와 비봉곡이란 음곡(音曲)을 말하고 있다. 1926년에 일본인 하기시마 교요(荻島敎雄)가 발행한『미광(微光)』에 영신곡(迎神曲), 송신곡(送神曲), 조문금조(召文琴操), 비봉곡(飛鳳曲) 등의 음곡이 기술(記述)되어 있다.
남당 박창화의 유고 가운데『신라사초』라고 하는 기록에 의하면 “파사이사금 9년 3월 조문의 사신 옥상인 등이 입조하여 악기 7가지를 바쳤다.”라고 하였으며, 지마이사금 18년 “신라왕의 비자(秘子) 소강 공이 7년 동안 조문국에서 거문고(琴)를 배웠다.”라고 하였다. 가야금보다 오랜 음악사를 말하고 있다.
난미리미동국과 달기현에는 미지악(美知樂)과 미지무(美知舞)가 있었다.
송방송 저 『한국고대음악사연구(韓國古代音樂史硏究)』에 의하면 달이(達已)는 다인지방의 향악이었다. 진흥왕(514~530) 때 만든 음악이라는 미지악(美知樂)은 단밀 지방의 속악(俗樂), 동시대 만든 미지무(美知舞)는 단밀 지방의 춤이었다. 고령가야의 상주 함창 그리고 신라 불교 초전지가 매우 가깝게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우륵(于勒)이 지은 12곡은 첫째 하가라도(下加羅都), 둘째 상가라도(上加羅都), 셋째 보기(寶伎), 넷째 달이(達已), 다섯째 사물(思勿), 여섯째 물혜(勿慧), 일곱째 하기물(下奇物), 여덟째 사자기(師子伎), 아홉째 거열(居烈), 열째 사팔혜(沙八兮), 열한째 이사(爾赦), 열두째 상기물(上奇物)이다.
노래와 춤 곧 가무는 신라의 고대사회 여러 지방에서 연주되던 토속적인 음악이었다. 우륵이 작곡한 12곡 가운데 넷째 달이는 과거 다인 지방에 전해오던 향악(鄕樂)이었다. 과거 다인을 달이(達已)라고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법흥왕(法興王) 때 지었다는 미지악(美知樂)과 신문왕(神文王) 9년에 연주했다고 나오는 6 무곡(舞曲) 중 미지무(美知舞)는 단밀 지방에 전해오는 음악과 춤으로 알려져 있다. 689년(신문왕 9) 신촌에서의 주악(奏樂)에서 미지무(美知舞)는 가척(歌尺) 없이 감(監) 4명, 금척(琴尺) 1명, 무척(舞尺) 2인으로 구성되었다.
1) 한서(漢書) 조선전(朝鮮傳)에 ‘우거(右渠)는 위만의 손자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1) 탈초본에는 ‘’로 되어 있으나, 필사본에는 ‘’로 되어 있다.
2) 영남읍지, 교남지 등에 의하면 조문국 옛터 서쪽의 화전(花田)에 모란이 무더기로 자라는 밭이 있다고 하였으며, 이것을 전부 뽑아버려도 다시 돋아나서 매년 봄이면 꽃과 잎이 무성하다고 하였으니 모란(牧丹)이 아닌 작약을 두고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윤형로(尹衡老, 1702~1782)의 계구암집(戒懼菴集)에도 조문국 시절 모란(召文時牧丹)을 노래한 바 있는데, 의성은 한때 전국 최고의 작약 생산지였다. 사적지 주차장에 핀 모란이 질 때쯤, 작약꽃이 핀다.
3) 탈초본에는 ‘’으로 되어 있으나, 필사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4) 탈초본에는 ‘’으로 되어 있으나, 필사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5) 탈초본에는 ‘’으로 되어 있으나, 필사본에는 ‘’으로 ‘’ 자가 두 번 들어 있다.
6) 담인집 기록과 결부 지어 볼 때 경덕왕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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