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자한사보(子罕辭寶)의 이야기

의성신문 2022. 12. 12. 11:32

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길 드리면 몰고 다닐 수 있고, 녹여서 붓기 힘든 무쇠도 잘 다루면 결국은 틀에 부어서 형태를 이룬다. 다만 한결같이 우유부단하게 놀기만 하고 분발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두고 조금의 진보도 없을 것이다.

현인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되어서 병이 있음을 부끄러워 할 것이 못 되나 일생토록 마음의 걱정이 없는 것이 바로 내 근심이다 하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사나운 말도 길 드리면 부릴 수 있고, 다루기 힘든 쇠도 녹여서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사람도 분발 노력하면 진보가 있다. 마음의 걱정이 없음이 진짜 내 근심이라는 현인들의 말씀은 훌륭한 명언이다.

사람이 한번이라도 사적인 욕심을 채울 생각을 하면 곧 굳센 기질이 녹아 나약해지고, 슬기가 폐쇄되어 어리석게 되며 은혜를 베풀려던 마음이 변하여 가혹해지고 깨끗한 정성이 더럽게 물들어 한평생의 인품을 파괴하고 만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탐내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겼으니 그리하여 한 세대를 초월했던 것이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탐심을 가지게 되면 굳센 의지가 약해지고 밝은 지혜가 어두워지며, 인정어린 마음이 잔약해지고 청렴한 마음이 타락하여 인생을 망친다. 그러므로 탐내지 않는 마음을 보배로 삼아야 속세를 초월할 수 있다.

옛날에 사성자한(司城子罕)이란 사람이 있었다. 사성(司城)은 벼슬 이름이고, 자한(子罕)은 그의 자()이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어사대부(大夫)로서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옥()을 가지고 와서 자한에게 바치자 자한은 이를 받지 않았다. 옥을 바치는 사람이 이 옥을 감정사에게 감정시키니 진짜 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으리께 바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자한이 하는 말이 나는 남의 물건을 탐내지 않는 것을 보배로 삼고, 그대는 이 옥을 보배로 삼고 있네, 만일 그대가 나에게 옥을 주면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보배를 잃게 되네, 그러므로 각각 자기의 보배를 갖고 있는 것만 갖지 못하네라고 하면서 물리쳤다.

이글은 좌씨전(左氏傳)에 있는 고사인데 자한사보(子罕辭寶)라는 제목을 붙여 서술하고 있다. 덧붙혀서 화막대어탐심(禍莫大於貪心) 화는 탐심보다 더 큰 것이 없다는 뜻이다.

생각이 일어날 때 적게라도 사욕의 길로 향해가고 있음을 깨닫거든 곧 도리에 맞게 길을 따르도록 하라 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닫고, 깨달은 즉시 방향을 돌리는 것은 이것이 바로 재앙을 돌려 복을 만들고, 죽음에서 돌이켜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중요한 고비이니 진실로 가벼이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생각이 사욕으로 흐를 때는 재빨리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라, 그래야 전화위복이 되고 기사회생이 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새옹실마(塞翁失馬) 또는 새옹마(塞翁馬)라고도 한다.

중국의 전한(前漢) 때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淮南子) 인간훈편(人間訓篇)의 이야기다.

국경지대의 한 노인이 있었는데 노인은 점을 잘쳤다. 하루는 그의 집에 기르던 말이 도망치자 동네 사람들이 와서 위로 인사를 했다. 노인은 복이 닥칠 징조라고 했다. 이윽고 도망친 말이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동네 사람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이것이 재앙의 징조라고 했다. 얼마 지난 뒤에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니 이번에는 행복의 징조라 했다. 1년이 지난 뒤에 오랑케 나라의 침략이 있자 모든 청년들이 전쟁터에 나가 열에 아홉은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의 부상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 평안하게 생활했다.

이렇게 화에서 복이 생기고 복에서 화가 생김이 무상하게 돌고 돌아 인세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사욕을 버리고 진리의 길로 가야만 화를 벗어나 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 고요히 있는 것은 진정한 고요함이 아니다. 소란스러운 데서 고요함을 얻을 수 있어야 비로소 이것이 천성적인 참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가운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참된 즐거움이 아니다. 괴로움 가운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심성의 참 기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소란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고, 괴로움 속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심신의 참된 움직임을 알 수 있다.

목이 마를 때 한방울의 물은 감로수와 같고 술 취한 뒤에야 술을 더 따르는 것은 없는 것보다 못하다 라고 했다. 감로수는 설탕을 달게 타서 끓인 뒤에 식힌 물이다. 여기에서 감로수는 원래 단이슬이란 뜻으로 불교에서 도리천(忉利天)에 있는 영액(靈液)을 말한다. 한방울만 먹어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살아있는 사람은 오래 살 수 있고 죽은이는 부활한다고 한다. 부처의 교법을 비유한 말이다.

원래부터 고요한 가운데 고요함을 맛봄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시끄러움 속에서도 고요함을 느낄 줄 알아야 마음이 진정한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즐거움 속에서 즐거움을 느낌은 진짜 즐거움이 아니다. 고생 속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아야 심신의 참된 기미를 엿볼 수 있다.

! 찬 서리가 사흘이나 연거푸 내렸다. 마당 앞 담밑에 심어놓은 호박을 열매는 따서 볶아먹고 전도 부쳤으며 잎은 밥 위 쪄서 양념 된장으로 함께 즐기는 쌈 재료가 되었다.

여름내내 담장을 덮어 태양열을 막고 싱싱함을 자랑하며 맑은 공기의 공급원이 되었는데 그것이 서리에는 그렇게도 얼띤지 첫서리에 폭삭 삶겨서 시들었다.

어이 그것뿐이라 송백(松柏)을 제외한 모든 나무가 단풍으로 물들었다.

세상은 차츰 소조적막(蕭條寂寞)으로 빠져들고 있다.

고시 한 수가 생각난다.

遠上寒山石經斜 쓸쓸한 돌 비탈길 멀리 산에 오르니

白雲深處有人家 흰 구름 깊은 곳에 인가가 있네

停車坐援楓林晩 가는 수레 멈추고 단풍 구경 하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 2월의 꽃보다 곱구나

 

달군 쇠는 망치로 때려야 하고 팽이와 아이는 채찍으로 때려야 한다. 호랑이 새끼는 산에서 키워야 하고 사람의 새끼는 글방에서 키워야 한다.

젊은 친구들아! 한번 읽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