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해치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남의 해침을 막으려는 마음이 없어서도 안 된다고 하니, 이것은 생각의 소홀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차라리 속을지언정 남이 속일 것을 미리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 이것은 살피는 정도가 지나쳐 덕을 해칠까 경계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말을 모두 마음에 간직하면 생각이 깊어지고 덕성이 두터워질 것이다. 요지는 남을 해치는 생각을 가져서도 안 되고, 남이 속일까 예측하는 마음을 가져서도 안 된다. 따라서 남의 해침을 막는 마음과 남의 속임을 당하는 마음이 공존해야 현명하다.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 하여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말고, 자기의 의견만 고집해서 남을 물리치지 말며, 작은 은혜에 사사로이 얽매여 전체를 손상시키지 말고, 여론을 빌어 사사로운 감정을 만족시키지 말라.
여러 사람의 앞이라도 정당한 자신의 의견을 토론하고 그렇다고 공연한 고집을 부려서는 안 되며, 사정(私情)을 베풀어 전체를 망치거나 공론을 이용하여 개인의 욕구를 채우지 말라. 결국 대아(大我)를 위하여 소아(小我)를 버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공을 위해서 사를 버리라는 것이다.
모두들 자잘한 사정을 생각하지 말고 전체를 생각하라는 좋은 뜻이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실화가 있다. 이는 촉한(蜀漢)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눈물을 흘리며 부하 마속을 사형했다는 기록에서 생겨난 말이다. 여기에는 공을 위해서 사를 버리라는 큰 뜻이 들어 있는 말이다.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 3월에 제갈공명은 위(魏)나라를 토벌하고자 삼군(三軍)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하여 북진하고 한중(漢中) 땅으로 나가 각지의 위군을 격파하고 같은 해 겨울에 장안(長安)을 공격할 군대를 기산(祈山)으로 출동시켰다. 당시 촉군의 군량미 수송로인 가정(街亭)이란 땅을 지키고 있었는데 만일 가정을 위군에게 빼앗기면 일선의 촉군은 꼼짝도 못하게 될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수비를 자진 담당했던 마속은 제갈공명의 작전 지시를 듣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그곳을 빼앗김으로써 촉군은 대패하여 한중 땅으로 후퇴했다.
제갈공명은 건흥 6년 5월에 간신히 철수한 뒤 가정을 빼앗긴 마속의 죄를 물어 그를 사형에 처했다. 그때 제갈공명은 말했다. 마속은 아껴야 할 장수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은 대의를 바로잡기 위해서 베풀 수 없다. 마속은 처형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나 그를 살려 둠으로써 법이 문란해지면 국가를 위해 더 큰 손실이 된다. 그래서 그를 처형하고 부하를 붙들고 대성통곡했다. 그는 눈물을 뿌리면서 동생처럼 사랑했던 마속을 죽이는 심정, 이는 분명히 대아를 위하여 공을 위하여 과감하게 사를 버린 것이다.
청천백일 같은 절개도 어두운 방구석에서 길러진 것이며 천하를 움직이는 경륜도 깊은 연못에서 살어름을 밟는 듯이 조심하는 데서 얻어진 것이다. 해와 달 같은 투명함도 남몰래 수양한 결과로 배양된 것이고 천하를 흔드는 경륜도 남달리 신중을 기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경륜이란 일정한 포부 아래 어떤 일을 조직하거나 또는, 그런 계획으로 세상을 다스림의 뜻이다.
여리박빙(如履薄氷)이란 말이 있다.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다는 뜻으로 매우 조심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어버이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경하여 비록 그것이 극진한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모두가 이와같이 하여야 마땅한 것이니 털끝만큼도 감격한 마음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만약 베푸는 사람이 덕으로 자처하고 받는 사람이 은혜로 생각한다면 이는 곧 길에서 만난 사람의 관계가 되니 이것은 장사꾼의 주고받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육친의 정은 극치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베푼다고 의식하고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이는 시정배(市井輩)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삼친(三親)이란 부부(夫婦)와 부자(父子)와 형제(兄弟)를 말한다. 삼친의 도리를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는 어버이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남편은 화의롭고 아내는 덕성스러우며, 형은 어질고 아우는 공손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친족 사이의 이러한 사랑은 마땅한 것으로 칭찬할 것도 칭찬받을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친족끼리 더 나아가서 일반인끼리라도 덕을 베풀고 자랑하거나 은혜를 베풀고 보답을 구한다면 이는 물건을 팔고 사는 상인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고움이 있으면 추함이 있어 대가 되니 내가 나의 고움을 자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추하다고 할 수 있으랴. 깨끗함이 있으면 반드시 더러움이 있어 대가 되니 내가 스스로 깨끗함을 좋아한다면 누가 나를 더럽다고 할 수 있으랴. 고움과 추함과 깨끗함과 더러움은 서로 대가 되니 고움과 깨끗함을 자랑하면 반대로 추하고 더러움을 들추어내어 비방함이 뒤따른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미(美)를 아름답다 여기므로 추악의 관렴이 생겨나고 선(善)을 착실한 것으로 알기 때문에 불선(不善)의 관렴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有無相生 難易相咸 유와 무가 상대적으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도 상대적으로 일어난다.
長短相相 高下相傾 길고 짧음이 상대적으로 형성되고, 높고 낮음도 상대적으로 대비된다.
音聲相和 前後相隨 음성과 성양이 상대적으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상대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위는 노자(老子)께서 만물의 상대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가 있음으로 상대가 성립되고 상대가 돋보이고 존재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자기 자랑을 일삼는다면 남의 비방이 따르는 것이다.
깨끗한 척하면 도리어 더럽힘을 당하게 된다. 인정이 박했다 후했다 하는 태도는 부귀한 사람이 빈천한 사람보다 더욱 심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은 집안사람이 이웃 사람보다 더 사납다. 이러한 가운데서 만약 냉철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고 평정한 기운으로 제어하지 않으면 번뇌의 장애 속에 있지 않는 날이 드물 것이다.
이제 겨울의 첫 절기 입동(立冬)이다. 상로는 기강하고 목엽은진탈(霜露旣降, 木葉盡脫)이다. 찬서리는 내리고 나뭇잎은 모두 진다. 벽틈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도 목이 쉬었다. 퇴계 선생의 시 한 수를 적어본다.
書傳千古心 경전 속에는 천고의 마음이 있는데
讀書知不易 글을 읽어도 알기가 쉽지 않네
巻中對聖賢 서책 속에 성현을 대할 수 있으니
所言皆吾師 말씀한바 모두가 나의 스승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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