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 월봉서원(月俸書院)의 초헌관 행사를 마치고
어제는 삼월삼짇날이요. 오늘은 3월의 초정(初丁)일이다. 삼짇날은 상사(上巳)일이라고 하며 중삼(重三)이라고도 한다. 언제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다. 이날 나는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俸書院) 원장의 소임을 천망 받고 그 행공을 위해 길을 나선다. 대구에서 유숙하고 일찍 출발하여 당일 돌아올 예정이다. 해질 무렵 대구에 도착하고 금서(琴?) 창업(昌業)군의 집에서 일박하기로 하였다. 외식으로 저녁을 때우고 돌아와서 TV를 시청했다. 그날은 모든 시청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종일토록 변론하고 내일 새벽이라야 구속영장의 발부냐, 기각이냐 판가름 난다고 보도한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 곧 취침하려 잠자리로 옮겨 알맞게 잠이 들고 제 때에 일어났다. 그날 새벽에 발표가 되었는데 구속이라고 보도되었다. 화면의 그림은 밤새 약간 야윈 듯이 보이며 표정은 굳어졌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매우 안타깝다.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가 곧 이런 것인가. 나라의 산업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국민의 존경을 받던 아버지 전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몹쓸 사람들의 흉탄에 보내고 홀로서기로 정치에 입문하여 10만 선량이 되고 선거의 귀재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최다 득표로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능란한 외교활동과 단호한 대북정책으로 국민의 호응을 받았으나 불통이라는 악평도 없지는 않았다. 민망하게도 마(魔)의 여성 꾐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마침내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 모두들 허탈한 마음 감추지 못한다.
아침식사를 일찍 마친 후 창업 군의 차를 타고 거리에 나서니 군자의 기상을 지닌 매화는 이미 져버리고 요염한 행화와 개나리의 짙은 향기를 가르며 교통체증 없이 시내를 빠져나왔다. 2개 차로였던 88고속도로가 4개 차로로 증설되고 광대(光州大邱)고속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거리는 208km라고 한다. 통과하는 지역을 살펴본다. 대구, 경북, 경남, 전북, 전남, 광주 등 6개의 광역 단체에 걸쳐있고, 통과하는 시군을 열거해보면 도시 근교의 반농반도로 나날이 발전하는 달성군이 관문이요. 면적은 작지만 딸기, 참외 등 특작 활동으로 주민생활이 수준 이상으로 윤택한 고령군을 지나간다. 가야산과 해인사로 잘 알려진 합천을 거쳐서 국민 관광 휴양지 수승대와 동계고택(桐溪古宅)의 고장 거창을 지나친다. 좌안동(左安東) 우함양(右咸陽)의 추로지향 함양을 통과하여 지리산 휴게소에 차를 멈추었다. 나설 때 가는 빗발이 차장을 적셨는데 비는 그칠 듯 말듯 안개가 산허리에 둘러 있다. 박카스 한 병으로 목을 적시고 다시 차에 올랐다. 넘어서니 이도령과 성춘향이 놀던 광한루로 잘 알려진 남원이요. 얼마를 달리다가 오른손 편 양지 바른 산비탈에 고색 짙은 와가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름난 명문가의 집성촌인가 여겼는데 알아보니 순창 땅의 고추장 산업단지이다. 시중에 널리 퍼져있는 순창 고추장이 이곳의 산물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강산을 얼른 얼른 지나치니 죽세공으로 전국에서 첫째가는 담양이요. 다음은 호남의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과 친교가 깊으며 호남 유일의 문묘(文廟) 종향자로 필암서원에 모셔진 김인후(金麟厚)의 고향 장성을 통과한다. 다음은 오늘의 목적지 무등산 자락의 광주시 광무동이니 여기 월봉서원에 도착한 때는 9시 40분이다. 돌아보면 6개의 광역시도와 10개의 시군을 통과하여 500리 먼 길을 두 시간 남짓한 사이에 달려온 편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월봉서원의 현판이 걸린 강당에 오르니 참여한 제관들이 모두 모여 있다가 함께 일어서 영접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서원의 수장 오인균(吳仁均)씨가 서원의 상황을 설명하여 주었으며 성균관 부관장이요, 한국서원연합회 부이사장으로 유림에서 활동하는 후손 대표 기세락(奇世樂)씨가 당일의 일정을 소개하였다. 그때부터 개좌하고 이미 작성된 집사 분정과 홀기를 반 위에 정중히 모시고 초헌관에게 공람 점검토록 하였으며 11시부터 향례행사를 진행하고 음복례와 오료를 마친 다음 초헌관의 강의가 1시간 진행되고 해산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일어서서 행장 안에 갈무린 강의 원고 4매를 장의에게 전달하고 참여 인원만큼의 복사를 요청했다. 종사원 한 사람이 받아서 사무실로 가져갔으며 향례행사의 시작 전에 초헌부터 말석임원까지의 제목을 세모진 패찰에 써서 각자 도색하여 정 위치에 배열하였으며 집사자는 자기의 패찰 뒤에 정열 정좌하였다. 영남과 다른 것은 창방이 없으니 앞에 있는 패찰이 그를 대신하는 모양이다. 마지막의 사준(司樽)과 봉작(奉爵), 전작(奠爵)은 미모의 중년여성으로 남색 상하 한복정장으로 앞뒤에 단령을 달아서 고전미가 넘쳐흐른다. 곧 이어서 집례의 창홀이 시작되나 호남 특유의 어음이라 낯선 것이 있었지만 그대로 보아 넘겼다. 관수세수와 점시진설을 시작으로 문헌공(文憲公) 고봉기 선생의 영전에 분향하고 초헌례와 음복례와 망료례(望燎禮)를 근엄하고 정중한 자세로 진행하였으며 모든 제관이 입배(立拜)가 없고 좌배(坐拜)로 예를 치르었다. 독축을 하는데 부복이 없고 모두들 서서 듣고 있으니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호남에서 손꼽히는 전통 있는 서원이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광주 KBS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하였다. 향사가 끝나고 음복의 순배는 없으며 종이 가방에 이미 싸놓은 음복과 회자를 함께 넣어서 순서대로 음복하고 삼헌관이 관복을 벗은 다음 모든 예절은 끝이 났다. 점심은 “삼헌관도 외상(獨床)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장의의 인사가 있었고 겸상으로 차린 식당음식이다. 서원과는 거리가 동 떨어진 변변치 못한 상차림이었다. 점심이 끝나고 강의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기세락 별유사가 내 옆에 정중하게 앉으며 말하기를 “행사진행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원래 광주시내의 청강생 100여 명을 요청하였는데 갑자기 유고하여 강의 진행이 어렵다는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준비된 자료는 100부를 복사하여 제관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준비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약간 허전하였다.
배부된 원고로 강의자의 사상은 전달되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강의 자료 중 한 대목을 여기에 적어둔다. 전북의 순창 출신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는 광복 후 초대 대법원장이 되었다. 당시 친일반민특위의 재판과정에서 다음의 명언을 남겼다.
聲妓晩景從良 노래하던 기생도 늙어서 남편을 잘 섬기면
一時粉臙無碍 한 때의 분 냄새가 부끄럽지 않고
貞婦白頭失守 정절을 잘 지킨 여인이 늦게사 정조를 잃으면
半生淸苦俱非 반평생 고생이 모두들 허사로다
정말 당연한 말이다. 강의가 취소되는 덕분에 한 시간 빨리 작별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때마침 호남선의 여객열차가 구불구불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운치가 있었다. 차는 달려 단숨에 동서 만남의 광장이다. 휴식하고 점심요기가 부실한지라 호두과자를 사서 기고봉선생의 후손 기세국씨와 세 사람이 나누어 먹고 대구에 도착하니 3시 40분이다. 창업군의 집에서 행장을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온화한 기온에 이슬비가 내린다. 청명절기가 5일 앞으로 다가온다. 한시 한 수를 적어본다.
淸明時節雨紛紛 청명시절 좋은 절기 가는 비 부슬부슬
路上行人欲斷魂 길가는 나그네 긴장 끊어질듯 하구나
借問酒家何處在 물어보자 주막집이 어디메 있는가?
牧童遙指杏花村 목동은 손을 들어 살구꽃 핀 마을 가리키네.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측근만 믿으면 암군(暗君)이 된다 (0) | 2017.05.15 |
---|---|
東泉 散稿 序 (0) | 2017.05.04 |
망담피단(罔談彼短) 미시기장(靡侍己長) (0) | 2017.03.31 |
옥산(玉山)서원의 향사 길에서 대통령 탄핵 뉴스를 듣다. (0) | 2017.03.20 |
칠보산장(七寶山莊) 여행 (0) | 2017.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