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담피단(罔談彼短) 미시기장(靡侍己長)
위의 제목은 천자문의 한 구절이다. 남의 결점 흉보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믿지 말라는 뜻이다. 옛날 어떤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수가 되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다가오자 집행관이 사형수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시오” 그러자 그는 “임금님에게 직접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 뵙고 말씀드리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집행관이 이 말을 임금님께 전해 올리니 임금님은 죽을 사람의 소원이니 들어주고자 사형수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사형수는 속옷 깊숙한 곳에서 금덩어리 하나를 끄집어내더니 “임금님, 이것은 아주 귀한 금덩어리입니다. 이 금덩어리를 정원에 심으면 나무가 되고 그 나무에 열매가 열립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이 심으면 금 열매가 열리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죄인의 몸이라 심어봤자 열매가 맺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는 임금님께 이것을 드리니 정원에 심어 크게 부귀를 누리십시오.” 금덩어리를 받은 임금은 자기가 심었다가는 금이 열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옆에 있는 신하를 보고 “나는 이미 금이 많이 있으니 그대가 심어서 금 열매를 거두시오.”라고 하였다. 신하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아닙니다. 저도 집에 보관한 금덩어리가 많습니다.”하면서 옆에 있는 동료에게 “자네가 가져다 심게.”라고 하였다. 그도 받아서 다른 동료에게 권하였다. 그러다 심을 사람이 없는지라 결국은 원점인 임금님께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을 처형하면 임금인 자신을 비롯해서 여기 있는 모두가 난처한 처지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임금이 “너는 참 지혜로운 사람이다. 너의 지혜 때문에 죄인을 방면하노라.”하면서 그를 놓아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깨닫지 못하면서 남을 비방하고 험담할 때가 수없이 많다. 남을 비방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행동을 살펴보고 반성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관즉득중(寬則得衆)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너그러우면 대중의 공감을 얻는다는 말이다. 춘추 전국시대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태평성세를 누리던 어느 날 문무(文武)의 신하를 모아 놓고 성대한 연회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초장왕은 사랑하는 후궁 허희(許姬)로 하여금 여러 신하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게 하니 모두들 거나하여 흥겹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촛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다. 칠흑 같은 방안은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해졌다. 그 틈에 어느 신하가 왕의 애첩 허희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아니, 어느 놈이냐.” 허희는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엉겁결에 그 놈의 갓끈을 잡았다. 떨어진 갓끈은 허희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전하, 불이 꺼진 틈을 타서 어느 무례한 놈이 소첩에게 해괴한 짓을 하였나이다. 소첩이 그 놈의 갓끈을 잡아떼었으니 빨리 촛불을 밝히고 그 놈을 잡아 엄벌하여 주옵소서.”하고 애원하였다. 왕은 “무엇이라고, 감히 누구의 안전에서, 내 이 놈을 당장 처단하리라.”하다가 왕은 갑자기 생각을 바꿔 ‘아니, 흥겹게 취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참는 것이 좋을 수 있다.’하고 “촛불을 밝히지 말라”고 명한 다음 칼을 칼집에 도로 넣고 큰소리로 “모든 신하들은 갓끈을 떼서 방바닥에 던져 버려라. 만약 갓끈을 떼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크게 벌하리라.”하였다. 그러자 참석한 신하들은 모두 갓끈을 떼어 방바닥에 던졌다. 곧 불이 켜졌으나 갓끈을 모두 떼어 버렸기 때문에 누가 왕의 애첩에게 입을 맞춘 사람인지 가려낼 수가 없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요. 모두 잊어버리고 술이나 듭시다.” 왕은 연회의 흥을 깨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런 일이 있고 5~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무렵 강대국 진(晉)나라가 초나라로 쳐들어왔다. 군사의 수와 무기가 초나라보다 더 강한 진나라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제 초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위태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에 초나라 장왕은 “하늘이 정녕 우리를 버리시는 모양이로구나.”하며 탄식하고 있는데, 어느 계곡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나더니 바로 진나라 군사를 향해 말을 달려가는 것이다. “아니, 저렇게도 훌륭한 장수와 군사가 있는가.”하며 장왕은 탄복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그 장수는 진나라의 대군을 차례로 무찔러가니 그들은 마침내 물러서기 시작했다. 결국 진나라 군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장수에게 패하여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 장수가 초장왕의 애첩 허희의 볼에 입을 맞춘 당교(唐狡)라는 사람이었다. 진나라 군사를 물리친 당교는 장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때 장왕은 “고맙소, 그대는 대체 누구인데 이와 같이 위급한 지경에서 나를 도와주게 되었소?”하며 매우 고마워하였다. “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수년 전 연회 석상에서 갓끈을 뗀 일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제가 바로 그 죄의 장본인입니다. 그 때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셨기에 저는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소신은 그 길로 깊은 산에 들어가 군사를 모으고 무술을 익혀서 은혜 갚을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하였다. 당교의 말을 듣고 난 장왕은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일으키며 공을 치하하고 후하게 상을 내리고 벼슬을 높여 주었다. "그때 잠시 분을 참지 못하고 당교의 목을 베었더라면 오늘 나는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없으려니와 나라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에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깊이 깨달았다." 이것이 곧 인(忍)지 미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뉴스속보가 터졌다. 약간은 초췌한 얼굴이 화면에 나타난다. “아무리 인생무상이요, 정치무상이라 하지만 탄핵의 인용으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는데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가.” 너무 가혹하다. 인생사는 100m 달리기가 아니고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후보경선에 총력전을 기울인다. 세상은 변했다.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3년 상복을 입었는데 지금은 삼우(三虞)까지가 길다고 장사 날에 벗어 버리는 말세의 풍조이다. 어인 일인가. 세월호의 노란 리본은 상기(喪期)도 없는가 보다. 보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맹자(孟子)의 한 구절을 적어본다.
至愚而不可欺者民也 지극히 어리석어도 속이지 못할 것은 백성이요
至弱而不可勝者民也 지극히 약해도 이기지 못할 것은 백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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