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颱風)이 지난 뒤에 바다는 조용하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바다는 조용해진다. 기러기가 호수 위를 날아갈 때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지나간 뒤에는 그림자가 사라진다. 바람이 대밭을 흔들어 우수수 소리를 내지만 바람이 그치면 대밭은 조용해진다. 중국 송(宋)나라의 대철학자 명도선생(明道先生)이 한 말이다.(?渡寒潭. ?過而無殘影. 風來疎竹. 風過而不留聲)
아름답고 조용한 우리의 강산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로 들끓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彈劾)으로 몰아넣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반대파의 찬성은 당연하지만 수족같이 부리던 심복들도 돌아섰으니 염량(炎凉)세태의 권력무상을 또 한 번 실감케 한다. 정치권과 모든 국민들이 공명 공감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촛불이다.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패자는 참담한 마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겸연쩍게 받아들이고 승자인 집회 군중들도 자아도취에 휘말려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근엄한 자세로 겸양의 미덕을 보이는 것이 성숙한 시민이요, 나라를 걱정하는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차기의 정치지도자로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촛불의 앞잡이로 국민의 마음에 비쳐지는 것은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다. 이것은 자칫하면 어느 편의 사주를 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크고 작은 일 가운데 승자만이 있을 수도 패자만이 있을 수도 없는 것은 불변의 철칙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것은 하늘의 명이요 일신의 영달이나 발전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불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목민관(牧民官)이 백성을 위해서 있나,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있나 말해 가로되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니라(牧而爲民有乎 民而爲牧生乎. 曰否否. 牧而爲民而可也) 다산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의 한 구절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도자의 짐은 너무나 무겁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서의 벽도 허물어야하고, 늙은이의 권위, 젊은이의 오만, 노소의 견해 차이도 화합으로 유도해야 하고, 보수와 혁신의 미묘한 갈등도 해소시켜야 하고, 대량살상 무기의 제조와 독설 악담을 일삼는 북한 집단도 달래야 하고, 사드 배치의 찬반도 봉합되어야 하고, 못산다고 아우성치는 서민의 가계도 돌보아주어야 한다.
새로운 지도자는 여망에 부응하고 하늘을 섬길 줄 알아야 하며 권력, 재물, 명예, 측근도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 날렵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임기응변의 명수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생각이 순수하고 우직하고 사려 깊은 지도자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배신하지 않고 탐욕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지도자에게 박수가 쏟아질 것이다. 신념이 확실한 지도자, 신뢰 받을 수 있는 지도자,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지도자에게 나라의 장래가 책임 지워 질 것이다. 예술가와 선비는 배가 고파야 한다고 했던 정치가도 배가 고파야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머리는 비어 있어도 생각이 바른 사람은 나라를 잘 다스린다.
옛날의 야사(野史) 한 토막을 적어본다.
조선조 정조(正祖) 당시 이조판서를 지내고 명관으로 알려진 이문원(李文源 1740~1794)은 명문가의 후예로 영의정 이천보(李天輔)의 아들이다. 그는 글 읽기를 싫어했으며 문장에 능하지 못하였는데 엉뚱하게도 임금이 친림하는 정시(庭試)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그 후 벼슬자리에 나아가 자기의 소임을 잘 처리하고 고을원이 되어서는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경상감사와 병조, 예조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과거 시험시관의 책임자가 되었다. 책임시관이 무식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림 부하시관들이 자기들끼리 담합하고 부정합격의 준비를 한 후에 책임자 이문원에게 보고를 드렸다. 그는 보고를 순순히 승낙하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답변하였다. 이어서 그는 “내 부탁이 하나 있소. 나의 아들이 장성해 가는데 공부를 시키고자 하니 모범답안 세 편을 골라서 나에게 주시구려.”하였다. 부하시관들은 “그야 어렵지 않지요” 마음속으로 “이미 합격자는 결정되었으니”하고 훌륭한 글 세 편을 가려서 올려 드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채점이 끝나고 실무자들이 이미 정해놓은 급제자를 발표하려던 참이었다. 이문원은 “잠깐” 하고 이번 과거의 합격자는 이 답안으로 처리하시오. 과거는 원래 글 잘 짓고 글씨 잘 쓰는 사람을 고르는 시험인데 이 답안은 여러분들이 고른 모범답안 아니요 하고 합격처리 하였다. 그는 소년시절 글공부를 싫어하였으나 운수가 좋아 과거에 올랐으며 시관의 책임자가 되어서는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이 누구보다 현명하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과거시험이 치러지던 시절에 가장 공평한 과거라고 평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의 야사이면서 실화라고도 한다.
송(宋)나라의 정치가요 학자였던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머리가 지나치게 발전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날뛰는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아 그 해로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차라리 어리석은 자라면 부정을 저질러도 한계가 있다고 갈파하였다. 같이 경계할 일이다.
요즘 세간에는 나라 안에서 첫 손 꼽는 모(某)여대에서 10억짜리 말을 타고 달랑대는 철부지 정유라를 부정입학 시키려고 멀쩡한 합격자를 낙방으로 몰았으니 정말 통탄할 일이다. 가장 신성시하는 학교에서 이와 같은 작태가 저질러지니 세상 어디 썩지 않은 곳이 있을까. 그러고도 하나 같이 “나는 모르는 일이다”하고 책임질 사람은 떳떳하다고 강변을 토해낸다.
아! 황하(黃河)의 흐린 물 어느 때 맑아지려나. 세상 어느 명판사의 판결도 자기 양심의 판결만큼 정확하지는 못하다. 법은 교묘하게도 진실을 은폐하며 착한 사람을 울리고 못된 사람을 웃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다사다난했던 병신년도 어언간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묵은 마목(痲木) 하루 속히 도려내고 설렘과 희망으로 정유(丁酉)년 새해를 맞이하자.
속담 한 구절을 적어본다. “하늘이 만든 화는 피할 수 있으나 자신이 만든 화는 피할 수 없다”(天作孼猶可違. 自作孼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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