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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의성군민독서감상문대회』 대상작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의성신문 2022. 9. 23. 10:08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스승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

 

# 새로운 도전! Return to Farming

 

14년 동안 회사생활을 했다.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잦았다. 이렇게 쭉 내달려오다 보니 탈이 났다. 내 자신을 진득하게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지만,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번아웃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업무환경을 바꾸면 좀 나아질까. 20225, 의성정착사업에 합격해 의성으로 귀촌했다.

 

연고지도 없는 곳에 사무실을 얻고, 집을 계약하고 가구를 채우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일을 저질렀다. 한두 달이 지나자 자연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줄어들고, 현실적인 고민들이 안개처럼 엄습해왔다.

 

왜 나는 정해진 대로 살지 못하지?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맞을까?

시골에서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일까?’

 

복잡한 감정들을 추스르고 있는 힘든 시기에 우연히 이 책이 다가왔다. 마치 기차가 어두운 터널 속을 빠져나올 때 순식간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눈부신 영감을 주었다.

 

# 이 시대의 지성, 마지막 지혜 부스러기를 담은 책

 

이어령 선생은 한 마디로 이 시대 최고의 지식인, 스승이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분이다. 88서울올림픽 굴렁쇠소년 기획,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등 누구나 알만한 굵직한 업적이 많지만, 나는 그 중에 낡은 말에 숨결을 불어넣는 마술사 같은 언어감각을 제일 높이 산다. 정보사회 키워드 디지로그’, 도시의 자투리땅에 세운 미니공원 쌈지공원’, ‘갓길등 선생이 창조하신 단어들은 쫀득한 과메기처럼 입에 쫙쫙 잘 달라붙는다.

 

이 책에는 암 투병으로 죽음을 앞둔 그의 16번의 인터뷰 내용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1년에 걸쳐 김지수 기자가 매주 화요일마다 찾아뵙고,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6개월 전 88세로 별세하셨지만, 죽음의 목전에서도 글을 쓰겠다며 집필을 이어오셨다.

 

처음에는 마지막 인터뷰, 유언, 죽음과 같은 단어들이 주는 미묘한 거부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화되고 포장된 거물 이야기는 너무 틀에 박힌 플롯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어령이 아닌가. 역시 달랐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도 내용은 산뜻하고 내리 잘 읽히기만 했다.

 

그 이면에는 암 투병으로 밤에는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남의 일인 양 덤덤하게 객관화하는 절제가 있을 것이다. 딸에 대한 부분도 담담하게 언급한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마음 아픈 일이 자식을 앞세우는 일이라는데, 하나밖에 없는 따님을 암으로 먼저 보내시고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마지막까지 작가로서의 의무, 진실된 메시지만을 전달하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는 태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 갓 튀긴 새우튀김 같은 신선한 현답

 

얼마 전 의성도서관에서 광고인 박웅현 씨가 강의를 했다. ‘책은 도끼다라고 책 제목을 정한 이유에 대해 묻자, 꽝꽝 얼어붙은 강물을 도끼로 내려치는 것 같이 나를 깨우치는 그런 책을 만나기 위해서 독서를 한다고 답했다.

 

우리말에 버려두라는 말이 있지? 김치가 묵은지 되고, 누룽지가 숭늉되잖아. 버리지 말고 버려두면, 부풀고 발효가 되고, 생명의 흐름대로 순리에 맞게 생명자본으로 가게 된다네. 그게 살아있는 것들의 힘이야. 버리는 건 쓸모없다고 부정하는 거잖아. 버려두는 건, 그 흐름대로 그냥 두는 거야.

 

시골에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도태되면 어쩌지걱정하는 나에게 김치가 묵은지 되면 더 맛있다구~~ 버리는 거 아니고요, 잠깐 버려두는 거야~~’하며 말을 걸어오는 스승. 정말 도끼로 후려치는 표현이다.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2번 순서대로 돌지 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지 않는다고. 나도 이것저것을 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어. 그러지 않았다면 재미없어서 못했을 걸세. 그리고 정상에 오를 만하면 갈증을 남겨두고 길을 떠나지. ? 올라가면 끝나는 거니까.

 

내가 너무 이것저것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고, 나도 그랬다고 말씀하신다. 내 책 역시 의무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고,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서 읽어보라고. 그렇지만 나는 주옥같은 표현들을 따라 밑줄을 긋느라 색연필이 몽땅 닳게 되었다.

 

나는 평생 누굴 보고 겁을 먹은 적이 거의 없어. 헤겔, 칸트도 나는 무섭지 않았어. 나는 내 머리로 생각했으니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하나 내 머리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은 흔치 않거든.

 

머리를 쓰는 사람은 수두룩하지만, 남의 생각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아주 사소한 대답도 부장님께 꼭 여쭤봐야 하고, 이 사람이랑 결혼할지 말지도 어머니께 허락 맡아야 하고... 먼저 말한 모델이 있어야만 대답할 수 있고 남의 생각이 우선이다. 내가 선택한 길을, 진짜 인생을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만약 이 길이 아니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길을 일탈해서 길 잃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평생을 길 위에서 모험하고 방황해야 계속 새 인생이 일어난다고 방황을 부추긴다. 목표가 없어야 한다고 또 비튼다. 정해진 대로 사는 것은 가짜 행복에 불과하다고.

 

합창하는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면 순식간에 고요해지거든. 그때 적막을 들었다네. 시골의 하늘은 맑고 밤의 모판에는 별빛이 내려앉아. 논두렁 물에 하늘의 별이 비치는 거야. 별빛 뒤에 숨어서 울던 개구리들이 돌을 던지면 일제히 딱 멈추면서 귀가 멍멍할 정도의 침묵이 생겨났어. 평소에는 침묵이 안 들려. 그런게 개구리 울음소리와 소리 사이에 생기는 그 침묵. 그 침묵만큼은 들을 수가 있어. 개골개골 울다가 돌을 던지면 면도날로 자르듯 생겨난 그 침묵은 참으로 신비로웠다네. 내가 올림픽에서 수십 억 지구인들에게 들려준 것도 바로 그 침묵의 소리야. 꽹과리 치고 수천 명이 돌아다니던 운동장에 모든 소리가 딱 끊어지고 어린애 하나가 나올 때, 사람들은 듣고 본거야. 얼마나 강력한 이미지였으며 소년이 굴리던 굴렁쇠만 기억들을 하겠나. 그게 어린 시절 미나리꽝에서 돌 던지며 듣던 정적에서 나온 이미지라네.

 

이쯤 되니 80대의 노인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궁금해 두 눈을 반짝이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재잘재잘, 한번 말머리를 꺼내면 멈출 줄 모르고 이어지는 수다스러운 아이. 아직 청춘인 나는 왜 이런 창조적인 시각을 갖지 못할까?

 

요리사만 요리하나? 집에 오면 다 요리하잖아.

 

밥숟가락으로 밥을 먹듯, 언어를 사용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고 철학이라고. 일상에서 우리는 이미 다 시인이란다. 창조적인 노학자에게 1:1 개인 수업을 받은 만큼 나도 곧 글도 쓰고, 새로운 단어들도 창조해 봐야지, 욕심이 생긴다.

 

끝이란 없어요. 이어서 또 다른 영화를 트는 극장이 있을 뿐이지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이 한마디. 갑자기 커튼콜 하듯 커튼이 내려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라고.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나도 앞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럭셔리한 인생스토리를 의성에서 만들어 볼 생각이다.

 

물음표 없는 느낌표가 이 세상에 있을까? 의문이 많았기에 책을 읽고 난 뒤 그 의문이 풀리면서 더 큰 기쁨이 생겼다. 요즘은 느낌표가 없는 책이 얼마나 수두룩한가. 인터넷이나 남의 말을 퍼 나르기만 하는 그런 책들은 두 번 손이 가지 않는다. 먹어도 영양가 없는 정크푸드처럼 감흥도 없다. 반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줄친 구절을 읽고 또 곱씹어 보아도 새로움을 주고 나의 머리속 세포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귀하고 신선한 능이버섯과 한약재를 넣고 고아낸 삼계탕의 진득한 국물처럼 건강해지는 기분을 주는 보약 같은 이 책. 오늘도 허리케인처럼 소용돌이치는 복잡한 내면의 물음들에 대해 이런 고민, 저런 고민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선 소감

전 의성으로 전입한 청년입니다

최 향 진(의성읍)

솜사탕 같은 구름이 하늘에 잔뜩 흩어져 있는 날, 구봉산에 올랐습니다. 평소 혼자서도 등산을 줄곧 잘하는데 초행길이라 길을 잃었습니다. 산에 묘지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많아도 너무 많아 의아한 생각이 들었죠. 지도를 열어보니 역시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의성은 고령사회이고, 무덤이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니 크게 무서운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쓸쓸해 보이는 무덤 앞에서 간단히 묵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의성으로 전입한 청년입니다. 예쁘게 봐주시고 제가 여기서 잘 살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좋은 소식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기도가 닿은 것일까요?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의성신문사에서 독후감 수상소감을 써 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글솜씨는 없지만,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추천한 것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부족한 면이 많은데 수상을 한 것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수상은 독서에 정진하고 부족함을 반추하면서 한걸음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의성에 귀촌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왜 갔냐고 묻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니요? 360도 푸른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 한밤중에 창문 너머로 들리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냇가에 흐르는 잔잔한 물소리, 동남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붉은선셋,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남대천둘레길 등 의성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의성도서관입니다. 책을 7권이나 넉넉히 빌릴 수 있고, 깨끗하고 아늑한 영감을 주는 공간에서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지요. 의성도서관에서 그림 수업에 참여하며 생전 처음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도 해보고, 유명한 광고인 박웅현님 강의도 듣고 친필사인까지 받았죠.

 

의성의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라면 언젠가는 저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앞으로도 의성도서관에게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그리고 이 좋은 기회들을 저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전해주는 좋은 선배가 되겠습니다. 의성의 조상님들을 비롯해 모든 관계자님, 저에게 좋은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