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풍속을 올바르게 이끄는 어진바위
(춘산면 빙계리 산70번지 仁岩)
빙혈과 풍혈로 대표되는 빙계계곡은 여름철에 인기가 많은 관광지이다. 그럼 겨울에는 어떨까?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빙계 얼음골 야영장이 있다. 그렇다면 계곡 안에 뭔가 겨울철에도 볼만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빙혈과 풍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겨울철에도 빙계계곡에 둘러서 즐길만한 것이 뭘까? 빙산을 한번 올라보는 것이다. 들러볼 만한 것으로는 최근 중창된 빙계서원, 빙산사지오층석탑 정도이다. 그런데 하나 더 생각해 볼 특이한 바위가 있다. 어진바위(仁岩)이다.
빙계서원 옛터 오른쪽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가 어진바위라 한다. 정오가 되어 바위 위로 한낮의 햇볕이 강하게 쪼일 때 어질 인(仁) 형태의 글자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세상 풍속을 올바르게 이끈다는 인암(仁岩)은 빙계 8경의 하나이다.
정오가 되어 제대로 살펴본 적 없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풍화작용으로 돌틈이 막히고 깨어진 까닭인지, 나 자신이 둔한 까닭인지 인(仁)자 형태의 그림자 모양을 살펴볼 수 없었다. 최근에 사람들이 공연한 말을 한 것인지 싶어 과거 문헌을 살펴보았다. 이광정(1714~1789)의 소산집에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구산(龜山)에 거주하면서 임필대 등과 함께 수정사 등을 유람하고 지은『문소산수가유기(聞韶山水可遊記)』가 있다. 인자석이라 부르게 된 유래가 그 속에 다음과 같이 실려있었다.
빙계서원 안에는 엄연히 사당이 있어 모재, 회재, 서애, 학봉, 여헌 5선생을 모시고 있었다. 개연한 생각에 바라보니 산처럼 높은 덕을 우러르는 감회가 더욱 간절하다. 마당 가에 우뚝하게 솟은 바위는 창울하여 사랑스럽다. 그 옆 조그만 돌 하나가 있는데 인(仁)자의 흔적(그림자)가 있어서 옛날부터 인자석(仁字石)이라 하였다.
생각해보자. 당시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시대이다. 하지만, 사찰 터에 바로 앞에 불교의 상징인 불탑이 있는데. 이곳을 서원 터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바위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쳐준 까닭이 아닐까? 유교의 근본 사상을 인(仁)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인(仁)은 인(人)과 이(二), 즉 이인(二人)으로 이뤄진 글자이다. 이인(二人)이란 ‘나’와 ‘너’ 두 사람을 뜻한다. 공자가 강조한 인도(人道)의 핵심은 인(仁)이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본성 즉, ‘사람다움’의 본질을 인(仁)으로 보았다. 나와 너, 그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이자 종교인 것이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박애와 같이 유교에서도 ‘너’와 ‘나’ 사이 사귐에 있어 사랑을 근본 사상으로 하고 있다. 다만, 유교에서는 ‘이 세상 모든 것에 자비를 베푼다’라거나 ‘널리 사랑한다’라거나 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을 미루어 보아 남에게도 그렇게 대하거나 행동하라는(推己及人)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내 부모를 먼저 존경하고 사랑해서 그 절실한 마음을 남의 부모에게 옮기고, 내 자식을 어여삐 여기고 보살핀 다음 그 절실한 사랑을 남의 자식에게 옮기라는 뜻이다. 문학의 효용성은 관계에 있다. 만약 관계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싶으면 책을 읽고서 어휘력을 높인다든지 개선할 것을 권한다.
※ 참고자료 : 『성균관 의례집』, 『소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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