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무너진 권위(權威)가 아쉽다
5월은 가정의 달이요. 계절의 여왕이다. 언제부터 제정되었는지 무슨 연유인지도 알지 못한다. 국어사전에도 기록이 없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필시 알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장비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그냥 가정의 달이요. 계절의 여왕으로 알고 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떼어 방바닥에 펼쳐놓고 5월의 행사로 표시된 날을 찾아본다.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다. 이는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의욕을 높인다는 뜻에서 제정된 날이다. 3일은 석가탄신일이다. 음력으로 4월 초파일이며 석가 탄신을 축하하는 날이다. 그는 불교의 개조로서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이다. 세계 사성인(四聖人)의 한 사람으로 중부 네팔 석가족의 중심지 카비라성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부인의 아들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고 35세에 득도하여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명의 수행자를 교화하고 교단을 설립하였으며 80세에 입적하였다. 그는 사체(四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인연(十二因緣)등의 교설을 남겼다. 5일은 여름의 첫 절후 입하(立夏)로 어린이날이다. 못자리 설치, 고추심기, 콩 씨 넣기, 참깨 심기 등 가을 곡식의 파종기이다. 언제나 이맘때가 되면 뻐꾹새는 앞 뒷산을 내왕하며 뻐꾹 뻐꾹 울어대고 씨앗 뿌리기를 재촉한다. 한편은 3.1운동을 계기로 어린이들에게 민족정기를 고취하기 위하여 방정환(方定煥)을 비롯한 일본 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동이 되어 어린이 날로 정하기도 하였다. 요즘 길거리에서 어린이를 볼 수 없으니 정말로 아쉽고 나라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8일은 어버이날이다. 조상과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에 대한 존경을 되새기게 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이다. 11일은 입양(入養)의 날로 되어 있다. 이는 양친(養親)과 양자(養子)사이에 친부모 친자식의 관계와 같은 법률상의 효과를 가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분 행위를 말하며 그의 시행을 강조하는 날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요. 성년의 날이며 가정의 날이라 적혀 있다. 스승의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스승의 길을 다짐하는 뜻으로 설정한 날이며 또한 정부에서 주관하는 하나의 행사로 만 20세가 되는 젊은이들에게 성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일깨워주고 축복 격려해주는 날이다. 19일은 발명의 날이니 과학정신을 기르고 발명의욕을 북돋우기 위하여 기념하는 날이다. 21일은 소만(小滿)이다. 여름 절후의 두 번째이며 만물이 점차로 성장하여 가득 차게 된다는 뜻이다. 부부(夫婦)의 날이란 표시도 되어 있다. 부부는 결혼한 한 쌍의 남녀가 남편과 아내의 신분을 유지하고 그 사이를 평생토록 사랑하고 돈독히 하자는 날이다. 25일은 방재(防災)의 날이다. 폭풍, 홍수, 화재 등 재해를 예방하고 대비하는 날로 제정되었다. 30일은 음력으로 오월 초닷새 날이니 단오(端午)절이다. 단오는 설, 보름, 추석과 함께 사명절(四名節)의 하나이고, 중오(重五) 또는 천중(天中)절이라고 하며 남정네는 씨름하고 탈춤과 가면극의 민속놀이요. 여인네는 창포에 머리 감고, 그네뛰기의 놀이가 있었으며 부채를 선물로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5월의 행사로 통틀어서 가정의 달이라 하였다. 세월을 거슬러 살펴보자. 길거리에는 예쁜 어린이들이 엄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들이 하였으며 어버이날을 전후하여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은 어른이 없었다. 지금은 자취 없이 사라졌다. 세월이 변했는가. 인심이 각박함인가.
얼마 전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고고학자들이 기원전의 유적에 쓰여 있는 글을 어렵사리 해독해보았더니 요즘 젊은이들의 한심함을 개탄하는 내용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세대 간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기대한 기성세대의 걱정은 단순히 세대 간의 갈등으로만 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자녀의 나태와 버릇없음을 질타하는 아버지가 드물고 학생의 비행이나 폭력을 보고도 따끔하게 꾸짖을 교편도 사라졌다. 잘못을 저지른 자녀를 불러 놓고 어머니가 마련한 회초리를 한 묶음 가져다가 아이에게 주면서 스스로 다리를 걷고 목침 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어미가 너를 잘못 길렀으니 네가 매를 들고 나의 종아리를 쳐라.”하고 위엄 있는 얼굴로 명령하는 것이었다. 비록 망나니 자식이라도 그 어머니 앞에서 참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옛 사람들의 자식교육 방법의 하나였다. 지금은 제 아이만 감싸 안는 훈육(訓育)방법으로 아이 잘못 기른 죄를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어미와 아비도 없는 세상이다.
중국의 전국시대 정치가 관중(管仲)은 권위 없이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고 그의 임금 환공(桓公)에게 말하였다. 자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부모의 권위는 포기한 상태이고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교사의 권위도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고 학부모의 여론에 밀려 뒷짐 지고 있으며, 사회를 책임진 지도자나 지식인의 언동에도 권위의 무게가 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권위는 일정한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권위 있는 사전이 없으면 낱말 뜻 하나도 분명하지 못하고, 권위 있는 전문의가 없으면 환자들이 수술대에서 생명을 맡길 수 없고, 권위 있는 철학자가 아니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마을에 권위 있는 원로가 없으면 의견을 통일하기가 어렵게 된다. 권위가 없는 사회는 분열되고, 어른의 기침소리가 없는 사회는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도 일갈할 목청이 없고, 기고만장 날뛰어도 꾸지람 할 회초리가 없다. 이것이 난장판이다.
예로부터 아버지는 자식의 하늘이라 했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는 것을 기우(杞憂)라고 한다. 지금은 하늘이 무너짐으로 사회의 혼란이 온다. 이것이야 말로 기우가 아니고 참으로 걱정이다. “사치가 극에 이르면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스승이 학생을 두려워 지도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위태하다.”고 철학자가 말하였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권위 있는 아버지와 교사와 어른들이 나타나야 할 때이다.
오늘은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의 날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과 태극기의 물결이 뒤덮인 광화문 광장의 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고 조기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큰 행사이다. 지금 투표의 마감시간이다. 이미 대통령은 잉태되어 있고 출산이 임박하였다. 촛불 쪽이냐, 태극기 쪽이냐가 국민의 관심사이다. 하지만 모두들 하늘의 소명(召命)이다. 다음 날 아침 뉴스가 보도된다. 압도적인 투표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과 소통과 통합을 주장하며 첫 행사로 국립 현충원을 참배하고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을 휘호하고 서명하였다. 여기에 경전의 한 토막을 적어본다.
“나라를 소유하고 다스리는 자는 재물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았고, 고르지 못한 것을 근심하였으며, 나라가 못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고, 평안하지 못함을 걱정하였다. 고르면 못사는 것이 없고, 평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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