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만다라문학』창간호 신인문학상 당선작
시 부문 당선작(3명)
정규수 | 임선희 | 최상길
《정규수》
1) 이슬의 추억
들꽃을 사랑한 나는
상처 나는 법 없다고
칼날 같은 풀잎 끝에 매달려서
무지개 꽃 피우라하고
뒹굴고 부비며 달음질 하여도
아픔 때문에 내일을 포기한 적 없는
태양보고 웃는데
아!
눈동자에 맺힌 나는
바람에도 상처 날까
눈썹에 매달리면 무지개 그리다 말고
훤히 보이는 사랑도 못 본 체
시시때때
옷 갈아입는 산 그림자만 담다가
붉은 노을에 탈까봐 아파도 떨어졌다 고.
2) 낙엽이 왔던 길
빗물에 씻기고도 모자라
올올이 타는 가슴 붉게 물들여 놓고
아직 덜 익어 부풀지 못 했나
풀지 못한 옷고름
당신만 보라고 매달려 춤춘 날들이
그렇게 부끄러웠었는데
당신은
어인 일로 이별만 챙겨야하나요
꿈 인가요
떠나야 하는 길일지라도 망 서렸는데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나요.
그대여
그대여
흔들던 바람도 미 웠 어 요.
3) 사랑하다 갈랍니다
어찌 꼬막보다 작은 가슴에 이별 담기가 쉬웠겠습니까.
냉갈에 그슬려 흘린 눈물도 눈물 이라 시던 할머니가 그립습니다.
검은 글자모양 쓰다만 일기장에 그 시절이 다시 생각날까
봄바람 불어오면 멀찍이 사는 친구 녀석 깜장 고무신 신고 알사탕 빨던 모습
시장 통 치맛자락 잡고 촐랑거리는 시간이 가다 설까
보름달 되어 안겨질까
토닥토닥 동지섣달 긴긴밤 마실 대신 손자 눔 무릎에 뉘이고 자장가 불러주던
시간이 우뚝 서서 허기진 모습으로 쳐다보니 보고 싶습니다.
그대로 서있기만 한다면
까칠한 손바닥에 다시금 이 등허리 내밀고
다시금 속 깊은 상처 눈물로는 씻지 말고 곁에 두어 정을 발라
허기진 달이 가슴에 차오르게 하라시던 말씀 생각나기에
작은 가슴에 박힌 옹이를 봅니다.
깊이 페인 주름살 펴시고 웃을 줄 아시던 모습에서
그 정을 가려내자니 모두가 사랑입니다
초승달에 두둥실 떠밀려와 넘어갈 줄 모르고 가슴에 머무는 것조차도
헤아리니 정이고 사랑입니다
사랑합니다.
가슴에 머물고 있는 이 정이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아가니
평생 사랑하다 갈랍니다 할무이 따라서 그케 살다가 갈랍니다.
● 심사평
만다라문학 창간호 시 부문 시인 상에 정규수의 [이슬의 추억] [낙엽이 왔던 길]
[사랑하다 갈랍니다]를 당선작으로 선정 한다.
정규수의 작품은 사랑과 이별을 바탕으로 서정성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과 이별이란 주제는 오랜 세월 많은 시인들이 다뤄왔기에 잘못하면 자신의
작품으로써 성공하기가 어려운 주제인데 정규수의 작품은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고
무난하게 성공함을 알 수 있다.
[이슬에 추억]에서는 풀잎에 매달린 이슬에서 자신의 눈동자에 매달린 눈물을 통하여
역시 사랑에 아픔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시는 이 시인의 시적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하겠고 [낙엽이 왔던 길]에서는 낙엽을 통하여 자신의 이별을 회자하고 있는 것이
역시 이 시인의 시적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사랑하다 갈랍니다]에서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사랑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산문 형식을 택해서인지 위 작품들에 비해서 긴밀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면
아쉽다고 하겠다.
끝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시인은 시인다운 패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인은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고 있는 시인이기에 앞으로 대성하리라 본다.
심사위원 박 효 석
■ 당선 소감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귀청 찢을까봐 귀마개를 한 탓에 당선 소식을 전하는 전화기
음성이 내 것 아닌 줄 알았습니다.
두 번째 당선되었다는 소리가 가슴을 칠 때서야 봄이 깨어났습니다. 아직도 시가
어떤 모습으로 걷고 있는 줄 모르는데 이를 걸음마를 시작하게 해 주신 것은 아닌가
하는 설레임만 내려다봅니다.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긴 했지만 아직도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기에 답답함이
여전하지만 용기 갖고 살란 위로로 생각하니 무엇보다도 이런 영광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올 봄 유난히 따뜻할 것 같습니다. 만다라 울타리가 이렇게 다정하고 온화하다는 걸
느끼기 때문입니다. 삶의 노래가 골짜기를 타고 흘러보는 이 가슴이 때론 시원하고
훈정 나는 소리로 끝없이 흘러가길 기원해 봅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56년: 전남 곡성에서 출생했다
2006년: 가을 (아세아 문예) 신인상
(현) 진해 SIX조선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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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희》
1) 작별
우리는 어느 별 아득한 자리에서 만나
반짝이는 샛별처럼 사랑하였다가
단풍 같은 속삭임에 물들고
시인이 갈라놓은 작별처럼 헤어졌을까.
우리는 말없이 죽어간 잎새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했는데
옷자락은 몸을 감싸고 웅 웅 거리는데
무수히 눈물로 누워버린 잎새의
주인 없는 바램으로 헤어졌을까
한낱 티끌 같은 우리는
어느 어느 시린 들녘의 숨은 온기로 만나
모닥불 같은 이야기만 남기고
다시금 살아날 수 없는 불씨 하나 남겨 놓은 채
죽어서도 반듯한 빈가지에 실려 갔을까
아 따사롭고 야멸찬
야멸차되 꿀 같아던 님이여
우리는 어느 두메살골
산상(山上)에 반짝이는 이슬로 태어나
꽃보다 아름다이 만나나 볼까.
2) 낙엽
기적 같은 바램 을 곱게 접은 종이비행기 하나
가슴에 품는다.
짧은 천둥 뇌리에 감기듯
기억의 정수리를 내려온 꿈
그 속삭임의 한마디 꽃의 심장에 묻고
아름다운 자취가 되겠다.
행여 꿈결인 듯 만나지는 작은 호수에
한 마리 학이여 도 좋고
키 작은 개구리로 울어도 좋거니
등 쪽에서 불어오는 숙명으로 걷다가
이슬만 잠겨 기진한 호수에 한 방울 눈물로
기꺼이 이슬의 늪이 되리니
재 너머 버려진 움막에 굳게 고리 걸었다가
아침이면 이슬 진달래 되어 우짖고
점심이면 종다리 들꽃으로 피어
들풀과 산꽃 내음 어우러져 동창 밝은 곳
골짜기 얇아서 가슴도 담그고
구름을 휘감은 나목의 쉼터에
주어진 침묵으로 겸허히 살리니
잊고자 하였던 한 꿈이 되겠다.
3) 텃밭을 꿈꾸며
삶의 텃밭에 옥빛 씨앗 뿌리고
후일 견딘 노고의 꿈 하나 다져
노을빛 날개 펴는 날 돌아오거든
그 계절 그 때에 돌이켜 옥빛 열매 이야기 하자
오늘은 견딜 몫 어제를 의지해
밝은 눈웃음만 지어
보이지 말아야 할 길 수초에 뿌리를 심고
수줍은 연잎에 꽃망울 맺히면
순수를 지켜낸 내 나이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
봄의 잔인함이 눈물 먹음을 때
장미의 붉은 피가 응고되어 맺히고
눈부신 말씀 무수히 열리는 날
소박한 넝쿨 뻗어간 가지만큼의 나이와
그 살을 일구는 흙만큼의 향기이기를
오랜 등 하나에 밝혀지는 빛이 되자
그 자존심의 텃밭을 일구는 이슬 이야기만 하자
가끔 사랑이라는 잡풀에 마음도 주면서.
● 심사평
만다라문학 창간호 시 부문 신인상에 임선희의 [텃밭을 꿈꾸며] [작별] [낙엽]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임선희의 작품은 이미즘을 중요한 작법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이미지즘에
매달리다보니 간혹 이미지가 중복되는 면이 잇고 언어 선택을 부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흠이면 흠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위적인 면이 드려나기도 한다.
그러나 응모한 작품 전체를 볼 때 그동안 열심히 습작한 성실성을 바탕으로
시인으로 대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보아는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특히 언어의 구성력과 기밀도 는 이인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앞으로 한국시단을 이끌 훌륭한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효석
■ 당선 소감
나는 매일 밤 달을 보고 울고, 매일 밤 달을 보고 웃는다.
달 속에 실신하고 싶어 매일 달의 계단을 놓는다. 한 층의 계단에 오를 때마다
시어들은 반짝인다. 반짝임을 품에 안고자 밤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흑비단
잉어를 낚기 위한 닻을 올린다.
먼 바다에 나갔다가 만선으로 돌아올지, 망망의 무덤에 갇혀 별의 화석이 될는지
모를 일이다. 사는 동안, 숨 쉬는 동안은 쉬지 못하고 말 오르며 내려와 닻을
올리는, 그런 삶의 고단한 길을 걸어야 할 것임을 안다
그 바다에 늙고, 낡아버린 모든 것들이 묻히는 날 아마도 내 무덤이 그 바다에
은가루로 반짝일 것이며 그 반짝임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쉽게 믿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믿으라 하시니 믿고 기뻐하라 하시니, 기뻐하며
감사하라고, 붉은 빛 노을이 창의 가슴에 스며드니, 감사 합니다.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무한 감사의 말씀드리며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약력
출생지 : 1964년 강원도 화천군 화천면 대이리
현 재 : 가정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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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길》
1) 별
나의 삶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세월 속
나의 마음 아느냐고
별님에게 속삭이면
사노라면 별거냐고
한 순간처럼 사라지듯
별똥별 떨어지네
어둠속에서도
샛별처럼 반짝이던
그런 시절도 있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탐욕의 오존층에 가려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네
내 가슴속의 별.
2) 유년시절
한 손에 바지 가락 흘려 허리춤 잡고
굴렁쇠 뜀박질하던 유년시절 달려가면
어느새 동구 밖 밭떼기 무덤가에 숨차 서 있는
나를 바라보네
엄동설한 때에는
논두렁 운동장 철사 끗지개 썰매질하며
숯검정 색칠하고 일등 이등 누구 뒤질세라 등수내기 하던
빙판 같은 세월에 수없이 넘어져도
좋기만 했던 시절
땅을 아무리 친구가 많이 따먹어도
마음 아프지 않았고
땅거미가 이슥하도록
우정의 목말 가마타고
가위 바위 보
수없이 이기고 져도
한없이 즐겁기만 했던 그 시절인데
지금은 세월의 옷자락
조금만 젖어도
그 때의 어머니 불호령 야단맞듯
가슴 아파 몸 둘 바를 모르는 세월 속에
내가 서있네.
3)산골 아침
간밤에 잘 잤느냐고
간밤 사이 임을 만났냐고
별들과 속삭였냐고
어둠이 가시고
햇님이 나의 몸을 말끔히 씻어주며
고단함도 상큼함으로
더덕 꽃이랑 제비꽃이
제일 먼저 빙그레 향으로 맞아주면
꾀꼬리 박새 청솔모가 시샘하듯
자신의 존재를 표하고 있네
바람개비는
나뭇가지 사이를 헤엄치듯
눈부신 햇살을 뿌려주고 있고
섶엔 개미떼 잠자리를 비롯하여
이름 모를 벌레들과
또랑가 맑은 물이 졸졸졸
삶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세속을 털어내듯
안에 차있던 숨은 토해내고
산 냄새를 가슴가득
들이마시고 있네.
● 심사평
최상길의 [유년시절] [별] [산골아침]을 신인상에 선정한다. 제목에서 뜻하는
것 같이 그의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다. 자칫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글을
쓸 때는 상투적인 내용으로 흐르기 십상인데 최상길은 그 것을 잘 극복하고 있다.
[유년시절]에서 ‘빙판 같은 세월에 수없이 넘어져도’라는 표현이라던가,
‘땅을 아무리 친구가 따먹어도 마음 아프지 않았다.’는 땅따먹기의 표현은
내용도 깊이 있어 이 시를 더욱 의미심장하게 하고 있다. 또한 [별]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탐욕의 오존층에 가려 있다.’는 표현은 이 시인의 시적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고 [산골아침]의 마지막 연도 이 시인이 앞으로 얼마나 크게
대성할 시인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쓰도록
분발하길 바라며 당선을 감축 드린다.
심사위원 박효석
■ 당선 소감
설도 지나고 처음으로 생산된 자재를 실고 납품 길에 나섰다.
봄 날씨치곤 너무 쾌청하고 바람도 알맞게 불어 와 나른한 오후지만 마음은 한결
상큼 하다. 서해안도로가 오늘따라 막힘없이 잘도 달린다. 수원 근처를 지나고
있었는데 만다라문학 김 영재 편집장님한데 열락이 왔다. 어제 내가 만다라문학
현판식에 참석해 인사차 온 것으로 알았는데 뜻밖에 당선 축하 전화였다.
어린 시절 학교를 걸어서 통학하였는데 이십오리가 넘는 신작로를 걷다보니 힘이
부치면 느티나무 아래서 바위에 앉거나 봉천내川 언덕 위 금잔디에 누워
김정식님(김소월)의 詩집을 읽고 습작하던 생각이 난다.
급변하는 시대에 누구라도 인터넷 문화를 모르면 이곳까지 올 수가 없다.
더 나이들기 전에 그 끼를 불씨를 살리고자 일념으로 오늘에 이루었다.
작품을 심사해 주신 만다라문학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 올리면서 저의
당선소감을 맺겠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이 탄생 되도록 경주 하겠습니다.
약력
생년월일 : 1948.10.15일생
학 력 : 원주 고등학교
병역사황 : 만기제대 상병
직 업 : 철을 다르는 사람(제조업)대표
결혼 유무: 처에 1남1녀 둠
기 타 : 산림청 지도위원
2007년 3월 10일계간 『만다라문학』 발행인 연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