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칼럼

지역갈등과 세대갈등

의성신문 2017. 5. 29. 11:05



지역갈등과 세대갈등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국가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장치이다. 선거를 통해 국민 다수의 의지를 확인함으로써, 갈등과 차이를 극복하게 해준다. 덕분에 19대 대선 이후 한국사회도 태풍이 지나간 후의 평온함을 잠시나마 누리고 있다.


선거는 유권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후보 사이에 선택을 요구한다. 후보자의 능력이나 그가 속한 정당을 보고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있다. 그러나 과거 수많은 선거에서 보았듯, 선거는 가장 유능한 대표를 뽑는 장치는 아니다. 유권자들마다 중요시하는 능력이 다르고, 그러한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역대 선거에서 선거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소위 지역주의 투표성향이었다. 자기 지역출신의 후보자를 무조건 선호하거나, 타 지역 출신의 후보자를 무조건 배제하는 투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역주의 투표 성향으로 혜택은 오히려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지역이 가져간다. 왜냐하면 지역주의가 약한 지역이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고, 자연 선거운동도 그러한 지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보이는 지역일수록, 오히려 경제개발이 지체되고 사회발전이 더뎌지는 양상을 보인다.


19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대구 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비교적 고른 지지를 받아, 대선에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퇴색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였다. 호남-영남으로 나뉘어 대선 후보 지지자가 확연히 갈리던 과거와 달리, 영남-호남에서 모두 다수의 지지를 받은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투표성향이 지속된다면, 정치인들은 수도권에 치우친 각종 경제사회적 혜택을 영남과 호남 지역에도 분산시키겠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들고 나올 것이고, 덕분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현격한 격차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19대 대선은 세대 간의 차이는 여전함을 보여주었다. 지상파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30대(56.9%)와 40대(52.4%)에서 높은 지지율을 보인 반면, 60-70대에서는 지지율이 20%대에 머물렀다. 반면 홍준표 후보는 70대 이상에서 50.9%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보였고, 30-40대에서는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했다.


지역주의 투표성향은 후진국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세대별 투표성향 차이는 선진국에서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해 미국 대선에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령대별 지지율은 보면, 10-20대가 37%, 30-44세가 42%, 45-64세 연령층은 53%, 65세 이상에서는 53%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한국 대선 만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청년층과 노년층의 지지율 차이가 30%정도였는데, 트럼프는 그 절반인 15%정도였다.


19대 대선을 통해 나타난 세대 간 차이는 한국사회가 그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생긴 결과라 할 수 있다. 전쟁을 치르며 생과 사의 절박함을 극복한 노년 세대, 허기와 추위를 이겨낸 중년 세대, 그리고 지금은 잘 살고 있지만 더 잘 살기는 어려울 것 같은 청년 세대 간에는 메꿀 수 없는 시대적 간격이 존재한다. 6-25 전쟁의 공포와 전후 혼란과 빈곤을 체험한 노년 세대들은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을 무시하는 젊은 세대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단칸방에서 월세를 살고, 주야 2교대 근무하면서도 내집 장만하려고 악착같이 저축을 한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고급 카페에서 4-5천원 짜리 커피를 마시는 요즘 젊은이들이 한심스럽다. 한편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부모 세대들이 부러울 뿐이다.


한 나라에 살지만 세대 간 세계관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바람직하기도 하다. 20-30대가 50-60대처럼 정체적으로 세상을 본다면 그러한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세대 차이가 아예 존재 않는 지역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 세대가 거의 전무한 농어촌 지역에선 세대 차이는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세대 간 정치적 차이가 장차 도시와 농어촌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의미한다. 청년층이 몰려 사는 도시지역과 노년층으로만 이루어진 농어촌 지역 간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영호남 간의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극복한 최초의 정권이지만, 도시와 농어촌 간의 새로운 양상의 지역주의 투표성향에 직면하는 정권이 될 수도 있다. 지방자치의 정착과 지방분권의 가속화를 통해 지역 간의 격차와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여, 보다 성숙한 민주국가로 발 돋음 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