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모든 사람의 학교
말로서 말이 많던 병술년을 서천으로 실어 보내고 육십갑자의 스물네번째 간지(干支) 정해년의 서기(瑞氣)가 동천에서 솟아오른다. 혹독한 추위도 눈도 비도 없었으며, 한강이 얼지 않는 가운데 긴 겨울을 보내고 우수(雨水)를 전후해서 은실같이 가는 빗발이 온 누리에 고르게 내렸다.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이 녹여주고 아울러 좌충우돌 세상살이에 찌들린 서민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주었다. 이 해에 바람이 있다면 연말로 예정된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하는 큰 행사가 모략과 중상과 잡음이 없는 가운데 뚜렷한 소신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국운이 크게 열리기를 시골백성 좁은 가슴으로 기도를 드린다. 미국의 성실한 평민 대통령 링컨이 어느 날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친구로부터 요직에 등용할 사람을 추천 받았다. 링컨은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았다. 채용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 성실의 표정이 은은하게 밝혀진다. 정직한 생활로 주변을 정리한 사람은 정직의 향기가 외부에 풍겨지며 거짓된 생활로 세상을 속여 온 사람의 모습은 어딘지 거짓의 약삭빠른 그림자가 표출되기 마련이다. 오랜 세월 불행에 묻혀서 밝은 세상을 모르는 사람의 얼굴에 나타난 느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감출 수 없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요, 얼굴은 인품의 표현이다. 성격의 반영이요, 마음의 그림자다 하고 자네가 추천한 그 사람은 얼굴에 성실의 표정이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같이 느껴져서 혹시라도 배신을 당할는지 모른다는 말로서 채용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사람은 계층이나 환경 지위의 고하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표정관리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웃음과 말씨도 역시 사람의 인품척도를 가늠하는 저울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옛 선비들은 다소비단사(多笑非端士)요, 다언비군자(多言非君子)라 하였다. 다시 말해서 웃음이 헤프면 단정한 선비가 아니요, 말이 많으면 군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웃음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근엄한 표정으로 사물을 평화롭게 보는 은은한 웃음, 뜻밖의 행운을 얻은 만면 희열의 웃음, 오랜만에 격의 없는 친구를 만나 술자리를 벌여놓고 지난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걸판지게 웃는 호방한 웃음, 귀여운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웃음들, 모두들 아름답다. 반면 상대방에 불만을 품고 꾸며서 흘리는 비수 같은 웃음, 남을 비하하는 표정으로 입 언저리에 번지는 경멸의 웃음, 신분이나 지위에 맞지 않는 수작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선웃음도 있다. 하지만 별다른 웃음의 원인이 없는데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신분이 높아서 덕스러운 기운이 몸에서 흘러야 할 처지인데도 이유 없이 남을 얕보는 듯 헤죽헤죽 웃는 얄팍한 소인의 웃음을 웃는 사람도 있다.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언어 또한 그 사람을 자질하는 기준으로 부족함이 없다. 시의에 적절하고 꾸밈새 없는 간결한 말은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말을 잘하면 말만으로도 남에게 진 은공을 갚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넉넉하고 유머 있는 말로서 아름다운 대접도 받을 수 있다. 말 잘하면 천 냥 빚도 갚는다.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 말로서 이루어진 속담이나 격언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도 말이 앞서지 행동 앞서는 사람이 드물다. 말이 말 만든다는 얘기는 고금을 통하여 불변의 철칙이다. 그러나 대중이 유무상통으로 뒤엉켜 사는 저작거리에 사람마다 저울같이 잣대같이 살기란 쉽지 않으며, 그들만이 사는 사회는 재미가 없고, 기름기 없는 파삭한 사회가 될 것이다. 때때로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이해 관계없는 씨다잔은 말들로 폭소를 자아내고 옆 사람의 무릎을 치면서 내말 좀 들으라고 거품을 물다가 한이 차면 꼬부라져 그대로 잠이 들 수도 있다. 다음날 아침에 이 사람아 내 어제 무슨 말했나하고 또 한번 크게 웃는다. 이것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가 되고 멋을 풍겨주는 일들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거나 혐오감 없이 일시 궤도를 벗어나서 주변에 평화로운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이것이 곧 멋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 고전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사람의 평가를 다음과 같이 하라는 기록이 있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면 그가 천거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고, 재물이 많은 사람이면 그의 씀씀이가 어떤지를 살펴보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면 말이 행동과 맞는가를 살펴보고 높은 사람을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면 모시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를 살펴보라, 궁핍한 사람이면 출처가 분명하지 않는 재물을 받는가를 살펴보고 신분이 낮은 사람이면 의롭지 않는 일을 하는가를 살펴보라 하였다. 란(亂)이 치(治)를 공격하는 사회,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사회, 사(私)가 공(公)을 앞서는 사회, 역(逆)이 순(順)을 누르는 사회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공자께서는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 하였다. 다시 말해서 말을 재치 있게 잘 꾸미고 얼굴빛을 교묘하게 바꾸는 사람이 어진 사람 드물다고 하였다. 근엄한 표정으로 무게 있는 말 한마디는 지도자의 품위를 아름답게 꾸며준다. 세 사람이 함께 걸으면 그 가운데 나의 스승이 있다. 정말 겸허하고 의미 있는 말이다. 사회는 모든 사람의 학교요, 역사는 모든 사람의 교과서요, 경험은 모든 사람의 스승이다. 평생을 배우면서 산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명정(銘旌)이나 신주에 학생이라 적었다. 누가 성인이냐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사람이 곧 성인이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글 / 김창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