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제722호 아름다운 눈빛 정중한 말씨

의성신문 2022. 3. 4. 14:05

사람이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거나 평소에 아는 사람이라도 오랜만에 만난다면 모두들 손을 잡고 먼저 그 눈빛을 살핀다. 눈빛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으며, 희노애락의 섬세한 감정이 그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마음을 잘 관리해야 아름다운 눈빛을 간직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혹은 여러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처음의 눈빛을 변함없이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혹은 자존심 때문에 혹은 이해관계 때문에 수시로 변화는 대화 환경에 따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지고 있지만, 누구나 변화하는 눈빛을 자신이 느끼거나 감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설 때나 밝은 창살에서 모습이 비쳐질 때, 내 눈빛이 평화로운가 살펴보며 상대방으로부터 달갑지 못한 얘기를 들었을 때나 윗사람으로부터 지나친 칭찬을 받았을 때의 눈빛은 순수한가 확인해 보고 싶다.

교양이 수준급에 있는 사람들이야 기쁘고 즐거움에 따라 눈빛에 변함이 없지만, 세속에 때가 묻어 탁해진 사람들이야 그것인들 마음대로 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다정하고 아름다운 그것을 행복한 마음의 잣대라고 말들 하였다.

옛날의 어른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다섯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행복하다고 한다.

그 첫째는 병 없이 오래 사는 것 수()를 이름이요. 둘째는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경제적 여유 부()를 말함이요. 셋째는 일신이 건강하고 주변에 걱정 없이 평안함 강녕(康寧)을 말함이요. 넷째는 자신을 수양하고 덕을 쌓으며 주변에 보시(布施)하는 것 수호덕(修好德)을 말함이요. 다섯째는 하늘이 부여한 목숨이 끝날 때 곱게 가는 것 고종명(考終命)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오복(五福)이라 하였다.

위의 일들은 태어나면서 하늘로부터 점지받은 운명이다.

그에 반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다소간 이룰 수 있는 다섯가지 삶의 계책이 있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주변의 벗들과 잘 어울리는 생계(生計), 다른 사람과 갈등없이 평화롭게 살면서 몸을 보전하는 신계(身計), 근검절약으로 경제적 궁핍을 면하고 살 수 있는 가계(家計), 늙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 나름대로 즐기며 살 수 있는 노계(老計), 죽음에 임하여 주변을 정리하고 미련 없이 갈 수 있는 사계(死計), 이것을 오계라고 한다.

오복이나 오계나 어느 것인들 소유하고 싶지 않으랴마는 세상일 뜻과 같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에 굶주리고 울고 있는 사람은 행복을 저축하고 있는 사람이요. 지금 배부르고 웃고 있는 사람은 다음 세대의 생활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인간사 길흉화복은 언제나 뒤바뀌는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다.

여기 성서(聖書) 이야기를 옮겨 적어본다.

두 사람의 여인이 성자를 찾아갔다. 한 여인은 울고 있었고, 한 여인은 교활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우는 여인에게 성자가 물었다. “그대는 왜 그렇게 울고 있는가?” 여인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젊은 시절 너무 가난하여 어느 때 이웃집에 가서 식량을 훔쳤습니다. 그 훔친 식량으로 굶어 쓰러져가는 부모와 자식을 먹여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도적질이 항상 마음에 걸려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의 죄 어찌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며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웃는 여인에게 성자가 물었다. “그대는 왜 웃고 있는가?” 여인은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평생에 죄를 지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은 항상 밝고 행복하여 이렇게 웃고 있다.”고 하였다.

성자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는 여인이여 그대는 저 냇가에 가서 큰 돌 하나를 가지고 오시오, 그리고 웃는 여인이여 그대는 작은 돌들을 치맛자락에 싸가지고 오시오.”했다. 여인들은 성자가 시키는대로 했다. 성자가 다시 말하기를 그대들은 가지고 온 돌들을 바로 그 자리에 갔다 놓고 오시오.” 울던 여인은 근심없는 얼굴로 금방 돌아오고 웃던 여인은 한참 후에 돌아와서 선생님 저는 돌들이 너무 많아서 있던 자리를 하나도 기억할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 왔습니다.” 하였다.

성자는 근엄한 표정으로 여인들에게 말했다. “울며 찾아온 여인이여 그대는 단 한 번의 죄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고통과 더불어 뉘우쳐 왔다. 큰 돌 하나를 그 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죄 용서함을 받으리라. 그러나 웃으며 찾아온 여인이여, 그대는 수없이 남을 속이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탐욕하고 자기 과신에 빠져 헤쳐날 줄 몰랐느니라, 그대가 가지고 온 그 많은 돌 들의 위치를 하나도 몰랐던 것처럼 그 죄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모두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그 죄 용서받을 수 있으리오하며 성자는 천천히 뒤돌아서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바로잡기가 힘든다. 마치 억센 말()과 같아 평소에 길들어져야 한다. 잘 못 길들이면 오히려 낭패를 본다.

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적국의 침입을 막으려고 말 100필을 사들이고 길들이고 길러왔다. 오래도록 외국의 침입이 없자 말을 끌고 방앗간에 가서 연자방아를 돌리게 했다. 얼마 후 갑자기 이웃나라에서 국경을 침범하자 방앗간의 말들을 전쟁터에 보냈지만 말들은 전진을 하지 않는다. 방앗간을 돌리듯 빙빙 돌기만하고 전진할 줄 모른다. 그 나라는 정벌을 당하고 말았다는 고사이다.

언제나 아름다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길들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사귄다면 허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사성어 두 구절을 적어둔다.

미언불신(美言不信) 아름답게 꾸미는 말은 믿을 수 없고

신언불미(信言不美)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못하다.

정수유심(静水流深) 조용한 물은 깊은 곳으로 흐르고

심수무성(深水無聲) 깊은 물은 소리가 없느이라.

 

올해는 나라의 농사를 잘 짓고 나라를 잘 다스리는 큰 일꾼을 뽑는 해이다. 말 잘하는 일꾼도 좋지만 신실하고 일 잘하는 일꾼이 더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