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美學 Ⅱ

610호-잊지 말자, 제2延坪海戰

의성신문 2017. 6. 27. 10:37



잊지 말자, 제2延坪海戰


2017년 6월 29일, 이 날은 제2연평해전(延坪海戰)이 있었던 그 날로부터 15주년이 되는 가슴 아픈 날이다. 그런데, 제2연평해전은 북한(北韓)이 우리나라 온 국민이 한ㆍ일 월드컵 경기를 즐기고 있는 틈을 노려 서해(西海)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함으로써 시작된 교전(交戰)이었다.


2002년 6월 29일, 이 날은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터키와 월드컵 3ㆍ4위전을 치르는 날이었다. 온 나라가 온통 축제의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이 날 오전 10시경 연평도 인근의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警備艇)이 85mm 함포(艦砲)로 우리 해군(海軍) 고속정 (高速艇) 357호를 기습적으로 사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날 9시를 좀 넘긴 때로부터 북한 경비정 두 척이 NLL을 넘어오면서 우리 해군의 신경을 자극했다. 해군은 즉각 이들에게 퇴거를 명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 PCF-684는 퇴거는 커녕 계속 우리 고속정 357호에 접근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 때 우리 해군의 교전수칙(交戰守則)은 선제사격을 금지하고 자위권(自衛權) 차원에서 밀어내기 대응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북한의 공격에 손발을 묶고 있었다. 제2연평해전은 북한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인데, 우리의 대응은 참으로 어이가 없어보였다.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햇볕정책’을 부르짖고 있었으니, 할 말을 잊는다.


제2연평해전은 어쩌면 1950년 6ㆍ25전쟁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6ㆍ25전쟁 때에는 그 날이 마치 일요일이어서 전방부대(前方部隊)의 장병들 대부분이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였는데, 북한은 이 때를 틈타 소련제 T-34 탱크를 몰고 3ㆍ8선 전역을 일제히 공격하여 삽시간에 남쪽으로 진격해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 국군은 낙동강(洛東江)까지 밀리면서 이제 더 갈 곳이 없었다.


제2연평해전을 떠올릴 때면 누구나 가슴이 멍멍해진다. 25분간의 숨가쁜 함포 교전으로 우리 해군(海軍)은 장병(將兵) 6명의 귀한 목숨을 잃었으며, 19명의 부상자를 냈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ㆍ황도현ㆍ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을 잃었다. 그리고, 357호 고속정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참으로 뼈아픈 참상이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는 순간이었다.

 

제2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에서 패했던 북한이 복수를 벼르고 있다가 월드컵 축구경기의 축제를 틈타 기습적으로 공격을 시도했다. ‘햇볕’을 쐴 만큼 쐐면서 우리를 공격해왔으니, 북한의 진심은 정말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월드컵 중계방송 중 TV 자막으로 뉴스속보가 계속 흘러나왔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고 있는 사이에 15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인데 말이다.

 

목숨으로 國家를 지킨 英雄들

 

2015년으로 되돌아가보자. 이 해 6월 22일에는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 시사회(試寫會)가 열렸다. 이 날, 경기도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는 13년 전 NLL을 지키다 산화한 전우(戰友)들을 잃은 장병들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자리를 지켰다고 하니,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영화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에 NLL을 넘어 기습적으로 공격해온 북한군과 용감하게 싸운 우리 해군 참수리 고속정 357호 장병들의 이야기이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 이경진 씨가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 나서 했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필자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어찌 그것이 필자만이었겠는가. “김학순 감독님은 영화에서 동혁이 엄마를 농아(聾啞)로 만드셨더라고요. 제한테 한(恨),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오히려 말을 못하는 것으로 표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병실(病室)에서 신음하면서 “엄마, 더 살고 싶어”라고 절규하는 아들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이경진 씨는 말을 이어갔다. “고등어 튀겨서 초고추장 발라주면 잘 먹었는데, 시장에서 고등어가 보일 때마다 아들 생각을 합니다.”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겠는가. “슬프지만 내 아들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영화장면이 떠오른다. 고속정을 살리기 위해 의식을 잃어가면서 조타기에 손을 묶은 한상국 조타장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리고, 의무병 박동혁을 향해 “배는 내가 살릴 테니 넌 가서 사람 살려.” --- “약이 사람 살리는 거 아니다. 사람이 사람 살리는 거다.” 조타장 한상국은 조타기를 붙잡은 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遺骸)는 바닷속에 침몰된 고속정 357호 조타실에서 수습되었다. 이 때, 한상국 중사는 ‘나라를 잃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다짐을 하면서 조타기를 잡았으리라. ‘햇볕정책’에 가렸던 이들이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구나 싶다.

 

영화 ‘연평해전’! 참으로 많은 사람을 울렸다. 이 영화를 보고 누가 울지 않았겠는가. 우리 해군 장병들이 참으로 용감했다. 그 뒷 이야기도 너무 많다. 357호 부정장(副艇長) 이희완 소령(당시 중위)은 교전 중 적(敵)의 포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고(故)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이 적의 포탄을 맞고 의식을 잃은 뒤 얼굴이 피번벅이 된 채 357호의 전투를 지휘했다. 그리고, 우리 장한 해군들은 북한군의 포격을 받으면서도 함포로 응사했다.


“아! 저렇게 많이 다쳤었구나.” 이 말은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 난 후 이희완 소령이 한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필자는 고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가 아들의 비보(悲報)를 듣고, 옷걸이에 걸린 아들의 해군 제복에 새겨진 이름표를 손으로 쓰다듬다가 와락 제복을 끌어안으면서 오열하던 영화의 장면이 아직도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목숨을 바쳐 NLL을 지켜낸 장병들의 희생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해군이 다시 강군(强軍)으로 태어나 적(敵)이 NLL을 감히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제2연평해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국민과 나라의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