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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는 훌륭한 교과서다

의성신문 2017. 6. 12. 11:40



역사(歷史)는 훌륭한 교과서다


조국이 광복되고 정국이 혼란할 무렵 좌익(左翼), 우익(右翼)의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조금 지나치면 적색분자(赤色分子) 더 심하면 빨갱이라고도 말하였다. 요즈음도 정치인들 중에는 색깔논쟁 운운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가장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이다.


어원(語源)을 살펴보자. 좌익은 급진적 또는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인 경향을 말하고 또는 그와 같은 단체를 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1792년 프랑스의 국민회의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왼편이 급진파인 자코뱅당이 차지하고 있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반대로 우익은 보수주의적, 국수주의적 입장을 지키는 개인이나 단체와 정당의 색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공부한 것이 아니고 국어사전의 풀이를 옮겨서 적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10년간 우파가 세상을 다스리다가 좌파가 정권을 잡았다. 좌파이건 우파이건 간에 모두들 대한민국 국민이다.


지난 5월 9일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압도적 다수표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날 취임하고 10여일이 지난 국민의 지지율은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되었다. 그 중 뚜렷한 사안은 주변의 강대국에 친서를 지참시켜 특사를 파견함이요. 여야 5당의 원내대표를 만나 협치의 시동을 걸었다. 청와대 상춘재의 오찬 활동에서 당 대표 여러분들 보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 자세를 보이고 비빔밥 그릇을 앞에 놓고 평화롭게 담소하는 사진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다. 주요 내용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공약으로 내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제가 되었으며 참석자 모두들 추진방향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공감하였으며 분위기는 매우 아름다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의 비핵화 추진을 위해 주변 4대국과 협력 추진하고 한미(韓美)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보도는 모든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다. 전쟁에 이기고도 외교에 밀리면 손해를 당한다고 하였다. 국익(國益)을 우선하는 실용외교로 한미동맹에 금이 가지 않도록 현명한 외교정책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자고로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대륙의 세력과 해양의 세력 부딪침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281년 고려 충렬왕 당시 원(元)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 명장 김방경(金方慶)은 고려군의 도원수로 참전하여 일기도(壹岐島) 박다(博多)에서 승전하였으나 종말에는 태풍에 적의 기습을 받아 패전한 일이 있으며, 1592년에는 일본이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빌미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국력을 소진하고 나라가 위급한 경우에 이르기도 하였다.


1894~95년에 걸쳐 청나라와 일본 간의 전쟁을 청일전쟁(淸日戰爭)이라고 한다. 갑오(甲午) 동학혁명의 진압을 위해 청나라의 출병을 요청하자 그들은 6천명의 군대를 파견하고 이의 진압에 앞장섰다. 이에 일본은 자국의 거류민 보호라는 구실로 7천명의 혼성여단을 진주시키고 청나라와 대치하였다. 동학혁명이 진압된 뒤 우리는 양국군대의 철수를 주장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계속 주둔하다가 이해 7월 아산만의 풍도(豊島)에서 청나라 군함을 공격하여 싸움을 시작하고 8월에 선전포고 하였다. 성환(成歡)과 평양(平壤) 등지에서 승전한 일본은 요동(遼東)까지 진출하는 한편 해군으로는 여순(旅順) 위해위(威海衛)등지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이듬해 4월 하관조약(下關條約)이 체결되자 청나라는 대만과 요동반도를 일본에 할양하였다. 그 후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행위는 더욱 노골화 되었다. 이것이 국치민욕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고 1904년 2월부터 다음 해 10월까지에 걸친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쟁을 노일전쟁(露日戰爭)이라 한다. 동점정책(東漸政策)을 표방한 러시아가 한국에 침투하여 여러 가지 이권을 얻고 점차 세력을 확대해가자 한국을 토대로 대륙침략의 야욕을 품고 있던 일본은 한국에서 자국의 우위성이 상실될까 우려하여 1904년 2월에 러시아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통첩을 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일본은 인천(仁川)에 정박 중인 러시아 군함을 격파하고 여순(旅順)을 기습한 뒤 10일에 선전포고하여 전쟁을 유발시켰다. 이에 달아서 여순의 함락전과 봉천대회전(奉天大會戰) 그리고 해전(海戰)에서도 연승을 거두었다. 1905년 9월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선으로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성립시켰다. 이로서 러시아의 극동침략은 좌절되고 일번은 한국에 대한 정치ㆍ경제ㆍ군사상 우위를 확보하였으며 러시아는 만주에서 철병하고 여순 대련(大連)부근의 조차지와 장춘(長春) 여순 사이의 철도를 일본에 이양하고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을 할양받아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이 났다.


지난 일을 살펴보아 약소국가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을 탈피할 수 없는 것이 자고의 현실이다. 지금도 사드문제와 통상교역 문제로 대미 대중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슬기로운 외교정책이 우리의 과제이다. 이념은 보수와 개혁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라와 국민을 평안하게 발전시켜야 함은 좌우와 보수 혁신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원로 정치인의 뜻을 수렴하여 원만한 정치를 진행하리라 믿어진다.


역사를 회고하면 조선조 연산(燕山)당시 성희안(成希顏), 박원종(朴元宗), 유순정(柳順汀)이 모의하여 1506년에 패륜과 음란의 학정을 일삼는 연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晋城大君)을 왕위에 추대하여 정권을 바꾸고 위의 반정공신 세 사람은 삼정승(三政丞)이 되었다. 이것이 중종반정이다. 하지만 조광조(趙光祖)의 급진개혁으로 기묘사화를 일으켰다. 1623년에는 이귀(李貴), 김유(金瑬) 등 서인의 중심인물이 주동하여 광해군(光海君)을 몰아내고 능양군(綾陽君)을 추대하여 인조반정에 성공하고 이귀, 김유를 중심한 서인정권이 형성되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친명(親明), 친청(親淸)과 강화와 척화파의 갈등으로 병자호란의 큰 전란을 겪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역사를 거울로 삼아서 반정공신의 생각도 받아들이고 반대세력의 의견도 절충하여 어려운 국내외의 시국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정책이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사 말씀을 적어본다. 큰 종(鍾)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가득 찬 물병은 출렁이지 않는다. 순하고 부드러운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반대로 배를 엎어 버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