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측근만 믿으면 암군(暗君)이 된다

의성신문 2017. 5. 15. 14:41

측근만 믿으면 암군(暗君)이 된다


“신을 모독하지 말라. 가까운 사람의 말이라도 잘못을 따르지 말라.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예측하지 말라.”(無瀆神, 無徇枉, 無測未至)고 선인들은 글로서 경계하였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동경하여 부질없이 기대에 사로잡히고 마음을 조이면서 자기만족에 급급한 세상살이가 한판의 요지경 속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로 지난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게 되고, 반성보다는 오히려 아쉬움과 때로는 비탄에 빠지기가 일쑤이다. 아마도 사람이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두 번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원초적인 행위로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오지 않은 미래의 만남에 가슴 설레고, 현실의 이별이 아쉬워 슬픔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것이 모든 인간의 약점이다.


옛날 성현들의 말씀 중에 “글 가운데 지극히 즐거움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곧 ‘책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뜻이다. 옛날의 선비들은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 하여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독서하는 것을 가장 건전하고 바람직한 생활이라 했다. 글 속에는 많은 재물이 있고 많은 보물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옛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하지만 독서를 통하여 시공(時空)을 초월한 대화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것을 즐겁고 보람 있는 일로 여겨서 독서상우(讀書尙友)라 하였다.


이제 봄철의 마지막 절후 곡우(穀雨)가 지나고 여름의 첫 절기 입하(立夏)가 다가온다. 화사한 꽃들이 한 잎 두 잎 져버리고 산천은 하루가 다르게 신록(新祿)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때야 말로 가는 비 내리고, 화창한 바람 불고, 달 밝고, 꽃 피는 계절이다. 망중한(忙中閑)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정서를 살려가면서 일 년 먹을 양식을 얻기 위해 파종하고, 이식하고, 과수 가꾸기에 열중하는 가운데 우순풍조(雨順風調)하기를 기다려본다.


형제간의 우애는 집안화목의 초석이다. 그래서 부자자효(父慈子孝)와 형우제공(兄友弟恭)은 윤리의 근간이 되었다. 세상은 급변하여 동생에게 우애를 베풀 형이 없고 형을 공손하게 대접할 이유도 없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이상적인 자녀라고 한 것도 옛날이야기가 되고 아들 딸 구별 없이 하나만 출산하고 문을 닫아 버리는 경우가 주변에는 허다하다. 어디 그 뿐이랴. 요즘은 연애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등 삼포세대라는 끔찍한 용어가 세간에 유행한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엔 대가족이 한울타리 안에서 살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때는 형우제공이 절실하게 필요한 가훈(家訓)이었던 것이다. 속담에 “처자식은 새로 지어 입을 수 있는 옷에 비유하고, 형제는 한 번 잃으면 다시 접속할 수 없는 수족과 같다.”는 극단의 사고를 낳게 하였다. 하지만 맹목적인 우애는 형제간에 버릇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옛날의 이야기 한 대목을 적어본다.
수(隋)나라 때 이부상서 우홍(牛弘)에게는 우필(牛弼)이라는 아우가 있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였다. 하루는 우필이 집에 들어와서 거나한 기분으로 형이 좋아하던 소를 활로 쏘아 죽여 버렸다. 크게 놀란 형수가 남편에게 급히 알렸다. 남편 우홍은 안색도 변하지 않고 “그럼 죽은 소고기로 육포(肉脯)를 뜨도록 하시오.”했을 뿐이었다. 동생을 크게 나무랄 것으로 알았던 아내는 남편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재차 강조해서 말하였다. 남편은 대꾸도 하지 않고 책만 읽고 있었다는 중국의 고사이다. 아우의 난폭한 행동을 바로 잡을 생각도 없고 사랑에만 깊이 빠진 우애도 생각의 여지를 갖게 된다. 국가나 사가나 측근의 사랑에 집착하다 보면 떳떳한 도리를 저버리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야 말로 사가는 가도가 비뚤어지고, 국가는 나라가 기울어지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건전한 의견과 바른 말을 제시하는 정적(政敵)이 있어야 하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지도자가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다.


제(齊)나라의 재상 관중(管仲)은 “군자에게 잘못을 저지를지언정 소인배에게 미움을 사지 말라.”하였다. 군자는 관용이 있고 정당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도 감싸 안아 이해하지만 소인배는 티끌만한 실수도 가슴깊이 담고 원한을 품어 보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계의 어느 원로가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하늘에 계신 영령들이시여 이 나라를 소인배로부터 지켜 주소서’라고 적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 국민들의 기대와 동떨어진 난장판의 정계와 사회에 소인배들이 난무하는 시대를 안타까워하는 말일 것이다. 이들은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지 않고 자파와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부당을 정당화 시키는 실천 못할 공약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니 국민들은 시름겨워 할 뿐이다.
구불인언(口不忍言)이라는 말은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다”는 말이요. 목불인견(目不忍見)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을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고 한다. 


지금 국민소득 3만$ 운운하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자처하지만 농공상인(農工商人)들은 경제위기의 난국 속에 허덕인다. 좋은 세월 오기만 기다리는 백성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줄 정치인은 없는지 한없이 기다려진다. 키가 훤칠하고 말을 잘해도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있고, 체수가 작고 말이 어눌해도 통 큰 대인이 있다. 세상에는 아이 같은 어른이 있고, 어른 같은 아이도 있다고 한다. 상대방은 전쟁준비에 광분하여 연일 핵실험을 하고 단방에 잿가루로 만든다고 엄포를 놓는다. 지금은 엄포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실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계의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사드배치가 가시화되고 미국의 칼빈슨 호가 양일간에 정박한다고 한다. ‘평화를 사랑하거든 전쟁 준비를 하라.’ 결코 지나쳐 들을 말은 아닌 것 같다.
천지신명이시여, 하늘이시여. 이 나라의 평화를 지켜주시고 능란한 외교활동으로 소신 있는 대북정책을 펼쳐 피차간에 떳떳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주머니는 열수록 좋고, 입은 잠글수록 좋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항상 반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아쉬운 점인들 어이없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