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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玉山)서원의 향사 길에서 대통령 탄핵 뉴스를 듣다.

의성신문 2017. 3. 20. 15:39


옥산(玉山)서원의 향사 길에서 대통령 탄핵 뉴스를 듣다.


며칠째 계속되던 꽃샘추위도 때가 되니 물러선다. 오늘은 온 누리에 봄빛이 완연하다. 얼마 전에 단촌(丹村)의 버스 정류장에서 시골의 농부차림을 한 중년 신사를 만났다. 그들 부처(夫妻)는 어머님의 안과치료를 위해 서울에 가는 길이요. 농부차림의 중년은 어머님을 배웅 나온 듯하였다. 여유 시간이 있는 지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고 통성명을 하면서 TV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그는 곧 얼마 전 농림축산부장관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동필 공이었다. 수신이 근엄하고 언사는 정중하였다. 그 때는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촛불과 태극기의 물결로 대치하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음이라 모든 국민이 나라 걱정으로 근심이 가득하였다. 이동필 전장관의 말씀이 “저들이 잘 모시지 못해서 오늘 이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하면서 겸연쩍게 말씀하였다. 그 분이야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 3년간의 장수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하였으니 당연히 할 이야기가 된다. 잘 모시지 못했다는 한 마디 말씀 가운데 깊은 생각이 숨어 있었다. 이는 곧 어진 신하라고 머리를 끄덕여 수긍하고 다음 일정을 잡아 한번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 후 10여일이 지났다. 못난 이 사람은 금년에 조선조 오현(五賢)의 한 어른이신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선생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 수임(首任)의 천망을 받고 그 행공을 위해 길을 나선다.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옛날 같으면 이 자리는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고 수신범절이 사람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어른들이 천망을 받았다. 세상은 바뀌고 도덕은 쇠퇴함이라.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까지 이 자리가 주어지니 실로 금석(今昔)의 감회가 머리를 스친다. 그 날은 3월 10일이다. 평소 나의 생활을 바로 잡아준 익우(益友) 성지 박찬혁(誠之 朴贊奕) 형과 동행이 되었으니 그는 헌관의 중임으로 천망 받았기 때문이다.


10시경에 출발하여 의성, 탑리를 거쳐 영천을 통과하자 11시가 되었다. 이 시각은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이냐 인용이냐를 결정지어 발표하는 때이다. 모든 국민의 관심사항이다. 8인의 재판관이 열 지어 배석하고 이정미 헌법재판소장의 신중하고 무게 있는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미 씌어져 있는 원고이지만 서슴지 않고 잘 읽었다. 시청자의 기대는 사람마다 엇갈리지만 그래도 어느 쪽이든 간에 몇 사람이라도 갈릴 줄 알았는데 모든 재판관이 인용으로 몰려서 어느 시대의 인민재판을 방불케 하였다. 애틋하게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쾌재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있으면 따르고, 그것을 놓으면 배반하는 염량세파(炎?世波)의 경박하고 비정함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다. 자고로 나라를 위해 직언과 충언을 아뢰는 어진 신하를 등용해야 하고 직언과 충언을 하는 신하를 물리치지 않고 수용하는 군주가 나라를 바로 잡을 것이다.


의승욕즉창(義勝欲則昌)하고 욕승의즉멸(欲勝義則滅)하니라. 의리가 욕심을 이기면 창성할 것이요, 욕심이 의리를 이기면 망한다는 말이다. 지도자께서는 좀 더 겸손한 자세로 참회하는 태도를 국민에게 보여주었다면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터인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촛불의 힘도 아니요, 태극기의 힘도 아니다. 만백성의 마음이요, 하늘의 뜻이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천리를 따르고 인정에 순응해서 나라가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이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쓰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표지석이 보인다. 천석(泉石)이 수미하고 아름다우며 세심대(洗心臺), 징심대(澄心臺) 사이에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목적지 옥산서원에 도착하였다. 하차하여 광장에서 의관을 정제하고 곧 구인당(求仁堂)에 올라섰다. 모든 사람들이 열좌하고 있다가 일어서서 영접하고 방으로 안내하였다. 몇 사람의 지우(知友)가 있는지라 수인사를 하고 정좌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한석봉이 쓴 구인당 현판과 추사 김정희가 쓴 옥산서원 현판이 걸려있어 당내의 근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제복을 갖추어 입은 참제관들의 모습이 매우 교양적이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선비의 냄새를 풍겼으면 좋겠다. 이어서 정갈한 상차림은 모두들 외상이요, 겸상이나 두레상 하나 없으니 “이것이 서원의 전래예절인가.”하고 향이 짙은 반주로 점심을 치르었다. 곧 개좌(開坐)를 아뢴다는 집사자의 음성이 들리고 상읍례를 마친 후에 정해진 자리에 좌정하여 집사 분정이 진행되었다. 조사(曹司) 공사(公司)를 천출하고 분정을 쓰는데 집필자를 몇 사람 바꿔가며 썼지만 하나같이 운필이 용이하고 범필로 움직인다. 정해진 분정판을 상좌로부터 공람시키고 벽에 게시하는 것으로 파좌를 아뢰고 조금 휴식 후에 서원의 경내를 살피고 유물관을 관람하였다. 그 곳에는 보물급 자료가 진열되었으며 서고를 살피는 중에 선조의 송은집(松隱集)이 정리되어 있음이라 경의를 표하였고 천사집(川沙集)의 장서 여부를 관리자에게 물었는데 목록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으나 찾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겼다. 몇 해 전 이용태(李龍兌) 박사의 유물관 기문을 이 사람이 악필로 근서 하였는데 장서각 입구에 걸려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 곧 정당으로 들어오고 간식이 나왔으며 좌석이 끝나고 장소를 정돈한 후에 수임의 강의를 청하였다. 예감으로 짐작하고 회재선생 연보를 상고하여 준비한 내용으로 30분 정도의 강의를 마치고 오늘 발표된 탄핵정국이 이야기도 곁들여서 끝을 맺었다.


강의의 주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본다. 서론, 잡설은 생략한다. 회재선생은 1491년에 태어나시고 10세에 아버님이 별세하였다. 12세에 어머님의 명으로 외삼촌 우재 손중돈(愚齋 孫仲暾) 선생이 상주목사 재임 시에 그 곳을 찾아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23세 당시 생원시에 합격하고 24세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당시 시관인 김안국(金安國)이 “이 사람은 임금님을 보필할 훌륭한 인재”라고 칭찬하였다. 27세의 정월 초하루에 발표한 원조 오잠(元朝 五箴)은 첫째 외천(畏天)이요, 둘째 양심(養心)이요, 셋째 경신(敬身)이요, 넷째 개과(改過)요, 다음은 독지(篤志)이다. 이는 하늘을 두려워하고 마음을 수양하고 몸을 조심하고 허물을 고치고 뜻을 독실히 가지라는 내용으로 후학들의 애독 자료가 되었다. 연이어 내외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42세에 향리로 돌아와 자옥산 계곡에 독락당(獨樂堂)을 지었으며 45세 당시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그 한 수를 여기에 소개하면.


春深山野百花新 산과 들에 봄이 드니 백화는 새로워라
獨步閑吟立澗濱 개울가에 홀로 서서 한가로이 시를 읊네.
爲問東君何所事 물어보자, 봄의 신아 너는 무슨 일을 하는가.
紅紅白白自天眞 붉은 꽃 흰 꽃 모두가 하늘의 이치로 절로 피고 지는 것을


50세에 다시 벼슬길에 올라 예조참판, 대사성, 대사간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55세에 의정부 우찬성이 되고 인종대왕이 승하한 후 명종대왕이 등극하는 과도기에는 원상(院相)으로서 국사를 전담하였다. 57세에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이기(李?)와 정순붕(鄭順朋)의 모함으로 천리변방 강계(江界)에 유배되었다. 7년간의 유배생활 중에 어머니 손씨와 아우님 농재(聾齋)공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 때마다 간절한 제문으로 생질과 아드님을 시켜 치전을 드렸다. 그 동안의 학문적 업적은 대학장구보유, 봉선잡의, 진수팔규, 중용구경연의, 구인록 등 저술을 남겨 후학의 지남서가 되었다. 63세 11월 강계 유배지에서 돌아가시고 다음 해 상여가 향리에 운구 되어 선영하에 안장되었다. 아드님 잠계 전인(潛溪 全仁)공이 주선하여 퇴계선생에게 행장을 청하고 받았으며 의정부 영의정의 중직과 문원공(文元公)의 시호가 내렸다. 1572년에 자옥산 계곡 독락당 아래편에 서원을 세우고 옥산이라 사액(賜額)받았다. 오늘은 서원의 체인묘(體仁廟)에 정중하게도 초헌관으로 향사를 드렸다. 1610년에는 신라의 설홍유후, 최문창후, 고려조의 안문성공, 정문충공을 비롯해서 조선조 오현을 함께 문묘(文廟) 승무하는 가장 높은 영예를 누렸다. 생전의 업적으로 사후의 영광이니 이것이 곧 관(棺)의 뚜껑을 덮은 뒤에 정평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은 사상초유로 파면을 당한 우리의 대통령과 앞으로 전개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다만 그 분의 공적인들 어이없다 할 수 있으랴. 세월이 지난 뒤에 사면복권이 있기를 부질없는 마음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