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장(七寶山莊) 여행
칠보산장(七寶山莊) 여행
우수(雨水)를 닷새 앞둔 2월 14일 빙점하 10도의 추위가 연일 계속 되어 햇 늙은이의 생활에 불편을 주었는데 오늘은 밝은 햇살이 대지에 따뜻하게 퍼지고 기온도 포근해졌다. 아마 우리 일행의 여정에 도움을 주려함인 듯 천지신명께 감사를 드렸다.
우리 일행의 나들이는 심기상통하는 지우(知友)들이 별다른 목적이나 의의를 가진 것이 아니다. 선세상망(先世相望)의 후예로서 쌓였던 피로를 풀고 소풍하는 여행일 뿐이다. 이 사람은 초년부터 승용차를 굴려본 일이 없다. 언제나 대중교통이 아니면 남에게 신세를 지면서 살아간다. 오늘도 나의 편의를 취하려고 11시에 단촌(丹村)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였는데 뜻밖에도 예정시간에 앞서 내가 거처하는 작은 집에 성유 이근필(聖幼 李根必)형과 류정하(柳正夏)형이 문 앞에 이르렀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지라 방으로 모시고 수인사를 한 후에 찻잔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작은 덧 휴식 후 출발하여 도리원의 한우식당에 다다르니 일행들은 이미 모여 있었다. 모두들 80대 중반의 노인이지만 허리 굽은 분이 없고 얼굴에 검버섯 없는 반듯한 자세에 신색도 건강해보이지만 걸음걸이에 나타난 노티는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것이 아마 인생의 공도(公道)인가 보다. 한우 불고기에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정다운 대화로 시간을 보냈다. 9명의 일행이 두 대의 승용차에 분승하고 중앙고속도로에 올려 북의성 나들목에서 금방 개통한 상주영덕고속도로로 바꾸어 타고 영덕방향으로 질주했다. 전날에 내린 자박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응달에는 붙어 있어 경관이 일품이었다. 짧은 다리 긴 다리와 짧은 터널 긴 터널이 연속되었으나 반듯하게 다듬어진 고속도로는 여느 고속도로처럼 교통량이 넘치지도 않아 한적한 가운데 일로매진하여 영덕에서 내리고 동해안 7번 국도를 달릴 때는 차창 밖에 제법 봄기운이 감도는 듯 했다. 산중을 지나고 해변을 달렸다. 짙푸른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있으며 오늘따라 물결은 조용하고 이따금씩 떠다니는 어선들이 한가롭기만 하다. 차를 세운 곳은 영덕군 병곡면 칠보산 모텔이다. 그 날 칠보산 박동연(朴東淵)회장이 약간의 신양으로 서울의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두 번의 도의원을 역임한 아드님 박진현이 일행을 맞이하고 아버님의 분부를 받았다고 하며 객실 세 개로 안내하였다. 정갈한 방에 간단한 여장을 풀고 한숨을 돌린 후에 곧 백암온천으로 차를 몰았다. 겨울이라는 절기 탓이요. 뒤숭숭한 시국에 불경기의 여파가 골골이 파고들어 인산인해의 성시는 간곳없고 썰렁한 분위기였다. 온천탕의 주차장들도 차가 드물고 사람도 이따금씩 보인다. 우리 9명은 따뜻한 물에 피로를 풀고 마냥 담그고 즐겼지만 주름진 살갗, 거친 피부는 어이 할 수 없는 듯 모두가 세월을 탓할 뿐이지만 일시라도 몸과 마음이 가뿐한 느낌이었다. 허리를 쭉 펴고, 팔을 흔들며 걸음을 걸어보니 발뒤축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번 여정의 추진위원장 군보(君甫)형의 짙은 농담을 한결같이 받아 넘기는 춘서(春瑞)형의 맞장구는 좌중의 꽃이었다. 한바탕 웃고 차가 칠보산장에 도착할 때는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다. 이때 우리를 맞이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초·중년시절 이 지방의 행정에 종사하면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퇴직 후에는 향교와 유소(儒所)에 출입하면서 유림의 지도자가 되어 남의 존경을 받는 이 고장의 터줏대감 노언 박동수(魯彦 朴東洙)형이다. 재치 있는 언변에 애주애연의 희세 풍류객(風流客)이라 좌중의 분위기는 한결 단란하였다.
저녁상에는 값비싼 게와 생선회를 가득 차리고 향기로운 반주가 있으며 두 번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유머들이 좌중 분위기에 스며들어 음식의 소화를 촉진시켰다. 얼근한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오고 대구, 안동, 상주, 성주 영해지방의 대표를 선발하여 꽃놀이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한창 진행 중에 뉴스특보가 터졌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북녘 땅의 괴수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독살되었다.”고 했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 권력집단의 실체는 친족이건 측근이건 가리지 않고 체제유지의 걸림돌은 가차 없이 처단하는 것이 저네들의 습성이다. 약간의 시사담론으로 대화하다가 노곤하게 잠이 들었다. 이름도 처음 듣는 물곰이라는 생선국으로 속을 풀고 아침식사를 하였는데 영해 박동수 형이 준비하였다. 1박 2식의 여유 있는 대접을 받고 돌아오면서 한 푼의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으니 이것이야 말로 악의 없는 불한당(不汗黨)이 되었다.
여장을 정리하여 출발하고 불영 계곡의 산길을 돌아오면서 나들이 때문에 미루어 놓은 대구대학의 이명식, 이경규 교수의 국채보상운동 자료조사의 대답을 머릿속에 구상하는 동안 봉화 한우식당에서 차가 멈추었다. 성유(聖幼)공이 점심대금을 치르고 달려서 도산의 퇴계 종택에 도착하여 종손은 내리시고 작별 후에 내가 거처하는 곳에 도착할 때에는 15일 오후 새참 때가 되었다. 간단하게 차를 마시고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여정을 마쳤다. 만남은 헤어짐의 원인이요, 헤어짐 또한 만남의 원인이다. 허물없이 잘 어울리는 모임은 세상에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멀지 않은 그 날에 맑은 얼굴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논어(論語)의 양화(陽貨) 한 편의 한 대목을 적어본다. 자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군자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남의 잘못을 찾아 떠들어대는 자를 미워하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는 자를 미워하고, 용맹스러우나 무례한 자를 미워하고, 과감하면서 막힌 자를 미워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공자께서 “자공아, 너도 미워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고 묻자 자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엿보고 아는 체하는 자를 미워하고, 윗사람에게 공손하지 않는 것을 용맹으로 자처하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을 자기의 정직으로 아는 자를 미워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즉, 악행, 불의, 무례, 부정 따위는 덕행이 높은 성인군자도 지극히 미워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조 국초의 명신이요, 문장가인 양촌 권근(陽村 權近)의 시 한 수를 옮겨서 적어두고 이 글을 마친다.
春風忽己近淸明 봄바람 건듯 불어 청명시절 가까우니
紬雨霏霏成晩晴 부슬부슬 가랑비 늦게 개이네.
屋角杏花開欲遍 집 모퉁이 살구꽃 피려고 하는데
數枝含露向人傾 한두 가지 이슬 머금고 갸우뚱 기울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