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주(傑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걸주(傑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김창회(본지 주필)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셨다. “걸주(傑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백성을 잃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음에 길이 있으니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다. 백성을 얻음에 길이 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백성을 얻을 것이다. 마음을 얻음에 길이 있으니 원하는 바를 주어서 모이게 하고 싫어하는 바를 베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백성이 어진 임금에게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며, 짐승이 들판으로 달리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이치이다.
옛날에도 학정(虐政)을 견디지 못하여 일어나는 민란(民亂)이 부지기수로 많았으나 조선조 순조(純祖) 11년에 국정의 부패에 불만을 품고 평안북도 가산(嘉山)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있었으며, 조선조 말기의 전봉준(全琫準)이 전라도 고부(古阜)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백성의 고혈을 짜는 폭정에 반감을 품고 일어난 동학란(東學亂)도 있었다. 하지만 일정한 지역에서 일어난 소규모의 민란이다.
요즘 무녀(巫女)인지 사이비(似而非)인지 관향도 모르는 최순실, 최순덕 자매의 홀림에 놀아난 위정자의 처사를 규탄하는 수백만 군중의 광화문 촛불 집회는 민란의 도를 넘어 국란의 수준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져야할 지도자는 추호의 사욕이 없었다하고 나라위한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면서 떳떳함을 강조한다. 국민의 마음은 천리만큼 떠났는데도 잡은 권력 놓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를 쓴다. 변호인으로 선정된 모(某) 변호사의 강변도 정말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지도자는 지도자다운 언사와 표정관리가 하나의 덕망이다. 국민이 지켜보는 화면에서 때로는 너그럽지 않는 사람으로, 때로는 입가에 미소를 흘리고 발걸음을 가볍게 옮기는 것도 시청자의 호감을 받을 일은 못된다. 온양공검(溫讓恭儉)의 처신으로 덕성을 품은 근엄한 표정이면 백성들의 동정을 받을 듯 도 한데 말이다. 명언(銘言) 한 수를 적어본다.
有福莫享盡 福盡身貧窮 복이 있다고 다 누리지마라. 복이 다하면 빈곤이 찾아온다.
有勢莫使盡 勢盡寃相逢 세력 있다고 다 부리지마라. 세력 다하면 원한 맺힌 사람을 만나게 된다.
福兮常自惜 勢兮常自恭 복 있을 때는 항상 아껴 쓰고 세력 있을 때는 언제나 공손해라.
人生驕與侈 有始多無終 살아가며 교만과 사치는 처음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이니라.
각설(却說)하고 무한한 시공의 순환에 따라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어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나고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도 지났다. 성장의 여름이 가고 결실의 가을도 어사지간에 가 버렸다. 지금은 거두어 갈무리 하는 겨울에 들어섰다. 봄의 씨앗 뿌리기에서 시작된 농사가 여름의 모내기로 이어지고 과수를 비롯한 특작관리를 위시해서 물관리 비료관리 농약관리에 여념이 없다가 지금은 삼동(三冬)에 접어들었다. 흙에서 태어나고, 흙에서 생활하고, 흙으로 돌아갈 인생이, 흙을 믿고 한평생 착하게 살다가 간식으로 마셔온 술이 도를 넘었는지, 각종 농약의 공해 때문 인지, 불치의 병을 얻어 사경을 헤매는 친구를 위문하고 돌아서는 마음인들 어이 홀가분하랴. 우리 농군 남정네들은 약삭빠르게 먼 곳을 계산할 줄도 모른다. 그저 순박하여 자연의 깊은 이치에 순종하고 잡념 없이 투박하게 일만 할 뿐이다. 잘되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못되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할 곳도 없다. 아픔이 있으면 참고 서러움이 있으면 삼키면서 고향의 정겨운 산하에서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흙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쫓기는 일상생활에 골몰하다 보니 멋쟁이 한량들처럼 낭만도 없고 풍류나 정서를 즐길 줄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치고 고만고만한 공직이나 회사에 근무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연봉은 4-5천만으로 셋방살이를 면하지 못하고 허덕인다. 그나마도 다행이다. 그와 같은 조건을 갖춘 실업자는 얼마나 되며 카드빚 돌려막기로 생계를 삼다가 극단의 길을 택하는 청년은 얼마나 되는가. 흙을 믿고 사는 우직한 농부처럼 일한만큼의 보수를 바라고 주변을 살피면서 순리로 살아가는 풍조가 아쉬운 세월이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백성이 고루 잘 사는 길은 진실로 형극의 길일진대 어찌 정치하는 그들은 내 몫 네 몫만 가지고 끝까지 시비만 벌이려 하는가. 모두들 겸손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가질 때 나라의 장래는 밝아질 것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세상이 굶주릴 때보다 인정은 메마르고 세련된 문화인이 우직한 농민보다 더욱 각박하니 아쉬움인들 어이없으랴.
아! 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자기의 곳간을 채우지 않고 국고를 축내어 고대광실을 짓지도 않을 임금과 신하는 없는가. 그런 사람에게 나라의 살림을 맡겼으면 좋겠다. 옛날에 어느 임금이 “대소 관료들이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할 방도는 없을까?”하고 철학자에게 물었다. 철학자는 대답한다. “네. 있습니다. 새로이 관복을 지어서 입게 하시고 그 관복에는 주머니를 달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주머니가 없는 옷이라면 수의(壽衣)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동서고금에 나라마다 풍속이 같은 게 별로 없지만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것은 공통입니다. 저승길에는 가지고 갈게 없다는 얘기지요. 염라대왕은 주머니 달고 저승에 오는 사람은 똥물에 거꾸로 처박는다고 하더군요. 공직자도 자리를 물러날 때 가지고 갈 것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위와 아래가 깨끗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세상이 어수룩하던 시대의 한낱 일화일 뿐이요. 요즘 사회에서는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세상을 걱정하는 어느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지금 세상에야 이런 처방이 어디 통하기나 하겠는가. 그것이 통할 수 없는 첫째의 까닭은 통치권을 가진 왕(王)이 사욕만 챙기는 도둑왕이기 때문이다.
어느 새 연말이 다가서고 날씨도 추워졌다. 세상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다. 이럴 때 일수록 마음은 항상 너그럽게 눈빛은 다정하게 말씨는 따뜻하게 하면서 묵은 해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국운이 대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6.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