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국 왕력(王歷)에 다가서다.
기원전 124년 조문국 초대 임금으로 용왕(龍王)이 등극하여 119년까지 재위 6년간으로 조문국이 열렸다. 그로부터 기원후 245년까지 22대 369년 조문국 왕력은 지금 인터넷에 알려져 있다.
조문국 사료가 뚜렷한 부분을 차지 못한 채 급급해 오던 중 의성군에서 조문국 소설을 소설가 박정수 작가에게 의뢰하였다. 작가는 조문국 자료 추적에 심혈을 기울이다 조문국 왕력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급하게 전갈이 왔다.
때마침 의성에서는 조문국에 관한 문화위상을 자리매김하려고 고분군 조성, 조문국 박물관건립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에서 천군만마를 얻는 것 같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일에 의성군민 모두는 의아해 하면서 제발 사실적인 역사 사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이다.
이를 학술적이나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대책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최초로 인터넷에 조문국 왕력을 올린 정성일씨 추적에 온 힘을 쏟았다. 전라남도 목포시청에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으로 확인한 후 직접 목포시로 달려가기도 하였고, 의성으로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그 자료가 소장 되어 있는 국사편찬위원회를 필자는 직접 두차례에 걸쳐 방문하였다.
담당관들의 협조로 남당 박창화 선생 유고집에 조문국 왕력이 실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당 박창화 선생에 대한 행장이나 관련자료에 대한 연구가 앞서야 하겠다.
필자는 이 모든 자료가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기에 국사편찬위원회에 협조를 요청하였다. 이제 이와 관련한 소설가 박정수 작가, 인터넷에 조문국 왕력을 올린 목포시 공무원 정성일씨, 국사편찬 위원회 박남수 사료실장은 조문국 왕력에 대한 내용을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자로 그 내용을 밝힐 것이다.
역사는 우리시대에 와서 그것의 진정한 임무가 사건의 설명에 있다는 것을 필자는 그 사실에 깨닫는 단계에 와 있다고 하겠다. 그 과정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말 할 수 있다. 그곳에는 과거의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가의 해석기능이 없이도 역사는 성립하지 못한다. 조문국 한 사건에 우리는 통일성을 찾아야 한다. 그 통일성은 이천년의 아득한 시대를 두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택기준은 결국 역사가의 해석과 가치 판단에 달려 있고 어떠한 해석이 가장 좋은가하는 것은 가장 유익한 일반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합리성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 그것을 찾기위하여 10여년간 폭넓은 안목에 시야를 넓혀 다각적인 접근에 힘써왔다. 이제 6월 11일 네 번째 조문국학술대회는 조문국 왕력이 역사적 근거로 가는 길목에서 평가 받는다면 의성의 위상, 문화의 위상 어떠한 조건보다도 앞서가는 위대한 곳으로 가는 길이 훤히 열려지기를 기원하여 본다.
글 / 김종우(전 의성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