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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의성신문 2008. 11. 26. 10:36

농촌현실 = 결혼이주민여성, 다문화 가정, 국제결혼                    

 

           

       

 ---------------------------글 / *이 동 주(의성신문 기자, 한국어지도사)


 

봄기운이 지루하게 내리던 날부터 아주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가르치는 일이 천직일거라는 스스로의 최면을 걸면서 그녀들을 만났다. 처음 그 먼 길을 갈 때는 서글프기 그지없었으며 무엇부터 어떻게 단계를 밟아야 할런지 막막했다. 항상 젖어 있어서 손닿기만 해도 쏟아질 듯한 그녀들의 눈빛을 만나는 일은 조심스럽기만 했다.


결혼이주민여성, 다문화 가정, 국제결혼 등 남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그녀들을 알게 된 것은 결혼이주민여성 방문학습 도우미로 일하면서 부터이다. ‘한국어지도사’라는 이름으로 그녀들에게 한국어는 물론이고 한국 문화, 풍습,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관계있는 학습은 무엇이든 도와주어야 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결혼이주민여성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면서 그들의 언어소통은 물론이고 그들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한국어지도사가 할 일이자 가르치는 목적이다.


내가 맡은 결혼이주민 여성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에서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녀들이 손님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한국인의 자리로 하루빨리 옮겨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내가 처음 결혼이주민 여성을 만난 것은 방문지도사라는 일을 하기 전의 일이다. 베트남에서 온 참한 색시를 동호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같은 회원의 아내라며 소개받았다. 

아직은 어려서 내 아들 녀석보다 나이가 적어보였던 베트남 새댁은 회원 중에서 늦장가를 간 농촌 노총각의 어린 신부였다. 다소곳하고 말수가 없어서 내성적이었던 새댁은 장날만 되면 남편의 손을 잡고 시장을 총총 돌아다니며 한국 생활을 배우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 새댁이 든든한 아들을 낳아서 백일잔치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그들의 생활은 알콩달콩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너무 예뻐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신은 가혹한 시련을 주었다. 갓 돌을 넘긴 아이를 두고 남편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남편이 없는 한국 땅에서 젖먹이 아이와 함께 남겨진 새댁이 안쓰럽고 걱정스러웠지만 자주 만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잊혀 졌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우연히 그녀의 밝은 모습을 만났다. 바로 방문지도사라는 일을 하면서이다.

제법 한국어를 하게 된 새댁은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시골 보건소 통역 일을 보게 되었고 젖먹이 아들은 벌써 유아원을 다니는 꼬마 신사가 되어있었다. 씩씩한 한국인으로, 한 아이의 엄마로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 없는 남편이 한국에서 가장 詩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런 새댁과 같은 결혼 이주민 여성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한국을 조금씩 알려주는 사소한 것이라서 때때로 자신의 존재가 작게 느껴질 때도 있다.


처음 한국어를 가르칠 때에는 자음과 모음부터 한 문장을 읽고 말하고 쓰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가르치는 일은 인내심을 키워가야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이 길에 서있는 간판이나 현수막을 또박또박 읽으면서 ‘선생님, 맞아요?’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한국어지도사에게는 한국어를 첫걸음,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진 교재가 있는데 이러한 교재는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교재로서의 역할보다는 교육 자료로 활용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각자 처한 현실이 너무 여러 가지였기 때문이다.

출산을 앞둔 이주민 여성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어휘나 문장을 먼저 익히도록 해야 했고, 아기가 태어나면 유아와 관계있는 어휘나 문장이 우선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재혼가정이거나 장애를 가진 남편을 도와야 하는 이주민 여성도 있어서 그녀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한국에 살기위한 현실적인 몸부림이었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했다.

특히 중국이나 베트남 여성들의 경우에는 한국으로 온 전례가 많기 때문에 한국어의 기본 자음, 모음 정도는 학습이 된 상태이지만 캄보디아 여성의 경우는 군주정치 국가이며 한국으로 오는 사례가 적어서 한국어 교육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교재를 가르치기 보다는 생활 속 어휘와 숫자를 익혀서 장을 보거나 영수증을 받아올 줄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고 시계나 달력을 볼 줄 알아야 하고 한국 요리나 남편과 시부모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가 그녀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사귄 하나 밖에 없는 친구이자 스승이었으며 상담자였다. 그런 자신의 위치를 알아가면서 처음과는 다르게 그녀들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보람되고 행복한 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매주 12시간씩 세 가정을 찾아가서 시중에 있는 사전과 몸짓, 표정, 영어, 한자 등 모든 지식과 자료를 이용해야만 한국어 수업이 가능했으며, 각자의 한국어 습득 상태에 따라 내가 만들어야 하는 교재도 많았다. 그런가 하면 나는 그녀들에게 무엇이든 몸으로 부딪혀보고 수다스러울 정도로 말을 많이 하라고 일러준다. 잘못된 것은 드러나야 고칠 수 있으며, 많이 실패해봐야 한국어를 빨리 익힐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나의 교육방법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런지 아직은 정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녀들의 고민과 갈등을 들어주는 역할 정도는 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한국어지도사로서 7개월 밖에 안 된 짧은 경력이지만 앞으로 7년을 아니, 더 나아가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는 여력이 남은 날까지 그녀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한국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하며 의성에서 사는 동안 농촌의 현실을 바로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결혼 이주민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이주민 여성을 항상 피해자의 위치로 봐서도 안 되며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나는 어느 정도 한국어를 알게 되면 ‘단군신화’를 꼭 읽어준다. 그녀들이 한국인이 되기까지는 곰의 인내만큼 어려운 일임을 알아야 하고, 우리나라의 한 민족의 뿌리부터 배워서 한국인으로 이 땅에 당당하고 올바르게 정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 이주민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하루속히 익히게 해야 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자녀의 교육 때문이다. 그녀들의 자녀는 그녀보다 더 많이 한국인으로의 자리가 필요하며 더불어 살아야할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한국 문화와 한국어 교육이 시급하다. 분명히 엄마가 이주민 여성임으로 해서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며, 보통 한국가정의 아이들과 섞여 학교나 기타 교육을 받을 때 그 자녀들의 당혹스러움이란 상상조차 어려울 것이다.

1차 교육 때는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다인면까지 그녀들을 만나러 갔었고 2차 교육 때는 옥산면과 사곡면을 찾아다니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대문 앞을 서성이며 나를 기다리는 그녀들이 있어서 오늘도 서둘러 문 밖을 나선다. 농사일로 수업시간을 지키지 못 할런지도 모르는 현실이지만 마당 한 쪽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나를 믿고 있으며,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일념으로 논둑길을 숨차게 달려오는 그녀들이 있어서 가슴 벅차다.

그녀들에게 가장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할 사람은 바로 가족이다. 돈 주고 사온 물건처럼 더 좋은 물건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먼 길을 돌아서 어렵게 얻은 며느리이자 아내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주민 여성 또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각자의 힘든 선택이었던 만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항상 옳은 일을 가르치기 보다는 항상 현명한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요령을 가르치고 싶다. 적어도 그녀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보통 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국 여성들보다 더 짧고 산재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건 거다.’란 식의 안이함보다 깨지더라도 부딪혀봐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다. 그녀들은 살아가면서 용기가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갖는 무게감만큼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 한국문인협회의성지부 회원, 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