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고(密告)자의 잇발은 호랑이 잇발보다 무섭다.
밀고(密告)자의 잇발은 호랑이 잇발보다 무섭다.
사람이 생활을 영위함에 두가지 자본이 있다. 그 하나는 물질적 자본이요, 다음은 정신적 자본이다.
물질적 자본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경제생활이요, 정신적 자본은 전통을 살리고 권위를 지키고 지조를 잃지 않는 것 등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세상을 바로잡고자 마음먹은 깨어있는 사회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세상을 한탄하고 정부를 나무라고,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윗사람을 원망하기는 쉽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만으로 뒤집힌 세상이 바로서지는 않는다.
콩알이 귀를 막아도 천둥과 우레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가랑잎이 눈을 가려도 드넓은 세상을 볼 수가 없다. 닫힌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새로운 생각을 가질 때이다. 업무처리를 능동적으로 하고, 시의에 적절한 말로 상사의 마음을 사로잡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훌륭한 공직자이다. 그러나, 갈 자리, 안 갈 자리, 설 자리, 앉을 자리를 구별할 줄 알고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면서 예의렴치(禮義廉恥)가 있고, 국가관이 투철한 공직자가 더욱 훌륭한 공직자이다.
희랍의 어느 젊은 철학자가 원로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어떤 짐승에게 물리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까?”
디오게네스가 대답하기를 “호랑이도 아니요, 사자도 아니다. 밀고자의 독한 잇발이 치명적이요, 아첨꾼의 잇발이 다음으로 무섭다네.” 하였다.
아첨과 밀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요, 그 역사가 유구하다.
“모든 사람이 아첨을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호감을 사야할 만큼 남들이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어느 철인은 말하였다.
천근의 무게와 성실한 말보다는 한 근의 아부성 발언이 더 값진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고금에 다를 바 없다. 밀고와 엿듣기 또한 오랜 역사를 가졌다. 옛날에 양식이 떨어진 흥부는 그 고을 김부자(金富者)가 죄를 짓고 맞을 매(笞)를 대신 맞는 매품을 팔고 돌아온다. 한 대에 한 냥씩의 선불금을 받아들고 돌아와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먹으면서, 아내에게 매품을 팔게 된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런데 그 마을의 돌쇠아비가 지나가다가 은밀한 흥부 내외간의 대화를 엿 들은 후, 동헌으로 달려가 흥부가 따놓은 매품을 가로채 버렸다.
옛날에도 이와 같이 일해서 버려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의 비밀을 탐지하여 그를 미끼로 갈취해 먹고사는 진드기 부류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때는 시골 남녀들의 밀회장소로 가장 적당한곳이 무르익은 보리밭이었다. 이들의 정사현장을 감시하려고 빈둥빈둥 놀면서 보리밭에 은신하였다가 한건만 잡으면 한해 양식을 거뜬하게 뜯어내는 수단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세상은 누구나 숨기고 사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이를 도덕적으로 은폐하는 문화와 악으로 폭로하는 문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깊은 못가에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자는 불길한 일을 당하기 쉬우며, 남들이 감추고 있는 것을 알아내기 좋아하는 자는 화를 면하기 어렵다는 옛말이 있다. 부부, 형제, 친척, 이웃 간에 고자질과 이간질 엿듣기가 난무하여 불화를 조성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세상이 되었으며, 비위에 맞지 않는 상대를 인터넷에 올려 남의 장내를 꺾어 버리는 악소년(惡少年)도 있다고 들었다.
원래 처세(處世)는 남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말한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대하는 인존자비(人尊自卑)의 풍토는 간 곳 없으며,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도 없다.
일요특강 또는 명사특강이라는 제목의 텔레비 강연이나 각종 광고물을 때때로 시청하노라면 부자 되는 법, 증권 투자정보,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승진 길에 앞장서는 법,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합법적으로 돈 떼어먹는 법, 나이 들어 호강하는 노후 대책 등 재미있고, 저속한 말들을 늘어놓은 만담의 종류가 주종을 이루고, 청중들은 폭소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며, 여러 가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제목의 책들이 서점을 차지한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조선조 정조 순조(正祖 純祖) 당시 실학을 집대성하여 국리민복에 영향을 끼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일찍이 서학(西學)에 눈을 떠서 천주교의 신자가 되었고, 요안이라는 교명을 얻은 바 있다.
당시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貞純王后)김씨에 의해 1801년 천주교 탄압의 신유박해(辛酉迫害)사건이 일어났으며, 그에 연류 되어 강진(康津)에서 유배생활이 19년 계속되었다. 아들 정학연(丁學淵)이 아버지를 모함하여 귀양 보낸 사람에게 말씀을 잘드려 풀려나도록 주선하겠다는 편지를 올렸다. 아버지 약용은 그럴 수 없다는 답서를 보냈다.
그 글의 한 부분을 여기에 옮겨본다.
옳음을 지키고 정신이나 물질에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훌륭한 처신이요-(守是而獲利者太上也)
옳음을 지키고 정신이나 물질의 손해를 다하는 경우가 다음이요-(其次守是而取害也)
옳지 못함을 따르고 이익을 얻음이 다음이요-(其次趨非而獲利也)
옳지못함을 추종하고 손해까지 당하는 경우가 최하의 경우이다.-(最下者趨非而取害也) 라는 말로 아들을 깨우쳤다.
다음에 말하기를 옳음을 고수하다가 해를 입을지언정 옳지 못함을 추종하여 이익을 얻을 수 없다하고 단호히 거절하여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그 고결한 선비의 기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 사회의 등불이 될 것이다. 콩을 심으면 콩 싹이 돋아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돋아나는 것이 불변의 철칙이다. 굽은 막대를 세워놓고 바른 그림자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글 / 김창회(의성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