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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호 향토사이야기-산사의 야생화 숲, 연꽃 위에 핀 고운사(단촌면 구계리 산222, 고운사 천년숲길)

의성신문 2022. 3. 11. 10:42

고운사 숲길과 숲길에서 만난 청노루귀                                             고운사 깽깽이풀 수술은 노란색이다         

 

계류 위에 지어진 가운루. 복개하여 냇가의 흔적은 가운루에 아래를 봐야 한다.
무늬가 특이한 조실채 기둥과 말없이 응시하는 우화루 벽면의 호랑이 그림

步步皆幽致 걸음걸음 모두 그윽한 운치
遙遙指梵宮 아득하니 산사로 향해 가네
春生殘雪外 봄은 잔설 밖에서 생겨나고
興入白雲中 흥은 흰 구름 안으로 들어가네
道韻林飈轉 도운은 숲 바람이 전해 오고
天機鳥語工 천기는 새의 말이 묘하구나
蒼厓轟鐵笛 푸른 언덕 시끄러운 철적 소리
俛仰古人風 옛사람의 풍도를 돌이켜 보네

-고운사를 걸어 올라가는 도중 입으로 읊다步上孤雲途中口占갑신년(1764), 대산집에서-

고운사로 가기 위해서는 중앙고속도로 북의성 IC에서 내린다. 이어 5번 국도를 따라 단촌면 소재지로 향한다. 소재지를 지나 점곡방향으로 가는 79번 지방도를 따른다. 신기 삼거리에서 좌측 지방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고운사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구계교가 있다. 오른쪽 길을 따라가노라면 고운 제1이다. 근처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부터 산문까지 거리는 1.5km이다. 가을이면 은행나무가 양측으로 노랗게 도열하는 길을 걷는 도중 최치원 문학관이 있으며, 출발지 근처에는 고운 캠핑장이 있다. 최치원 문학관과 함께 숙박이 가능하다. 숙식하면서 느긋하게 산책해 보자. 최치원 문학관에서 산문까지는 불두화가 철 되면 핀다. 문학관이 주관하여 열리는 천연숲길 맨발 걷기 행사가 있다. 고운 문화공원과 함께 숲길을 걸어보자.

절 안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산문(山門)을 통과하여야 한다. 최근에 건립한 듯하다. 주차장이 있다. 두 번째 문은 일주문(曺溪門)이다. 이곳까지 차량이 들어설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자 바로 천왕문(天王門)이다. 산문에서 일주문까지의 약 1km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산문에서 일주문까지의 풍경을 나도향은 그의 소설청춘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 정도는 최소한 걸어보자.

의성이라 고운사다. 울울창창한 대삼림(大森林)이 제철형(蹄鐵形)으로 등을 껴안아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은 높이 뜬 솔개가 그 중턱에서 배회한다.

절 옆으로 흐르는 잔잔한 시내 소리는 숲속에서 울려 나오는 자규(子規)의 소리와 이리저리 얼키어 한아(閑雅)한 정조에다 새긴 듯한 무늬를 놓는다. 가운루(駕雲樓) 옛집이 구름을 꿰뚫지는 못하였으나 천여 재 시일을 구슬 꿰듯 하였고, 최고운(崔孤雲) 선생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으나 그의 발자취를 고를 수 있는 듯하다.

교구 본사로서는 유일하게 사찰 주변에 상가 건물이 없다. 또한 유지·관리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산문에서 일주문까지 약 1km의 거리를 포장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흙길이어서 차들이 지나치며 먼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느리게 차를 몰았으면 좋겠다. 포장된 도로는 편리하다. 하지만 포장재로 쓴 아스팔트는 받아들인 열은 쉽게 방출하지 않는다. 해가 진 후에도 계속 복사열을 방출한다. 비포장이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이 편리한가? 길지 않은 거리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시원한 숲속 길을 걷는 게 좋을까? 흙먼지를 일으키니 포장하는 게 좋을까?

산문 지난 뒤 고운 요양원 반대편으로 숲길 들머리가 있다. 화엄 템플관에 이르기까지를 천년 숲길이라 한다. 현호색, 참개별꽃, 제비꽃 등의 야생화와 함께 3월 초순이 되면 노루귀와 깽깽이풀이 예쁜 자태를 드러낸다. 이때쯤이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모여든다. 접사 촬영지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가뭄으로 3월 중순이 되어야 꽃을 볼 수 있을 듯하다.

긴 털이 돋아난 잎 모양이 마치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진 노루귀. 다년생의 식물로 뿌리에서 나온 잎은 세모꼴을 한 타원형이며 3갈래로 갈라진다. 잎이 나오기 전 꽃자루의 끝에 한 송이씩 꽃이 달린다. 백색, 담홍색, 자주색 꽃이 있다.

깽깽이풀은 다년생 식물로 높이 20~25cm 내외이다. 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나온 잎은 연잎을 닮았다. 봄에 담자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잎보다 먼저 나와 여러 송이 핀다. 꽃받침은 6~8매이다. 고운사 숲에 자생하는 깽깽이풀의 수술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노란색이다.

천왕문을 지나자 시냇물 위에 가운루(駕雲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있다. 그 옆에는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불교와 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하였다는 고운 최치원이 건립할 당시는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라 하였다. 신라 신문왕 원년(681) 화엄 종주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엔 고운사(高雲寺)라 하였으나, 절 이름 또한 고운사(孤雲寺)로 바꾸었다. 더구나 우화루에는 옛 현판까지 남아 있다. 누의 이름에서 도교에서 불교로의 사상적인 흐름을 읽게 한다.

1729년 신유한(申維翰)의 고운사사적(孤雲寺事蹟碑) 양 계류가 합해져서 합해지는 곳에 있는 가허루가 절 앞에 있다.(駕虛樓 樓在寺前複澗合流處)”라고 하였다. 가운루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사찰의 중심부이다. 고운사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자. 사적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성현에는 서쪽은 운람사(雲嵐寺), 북쪽은 고운사(孤雲寺), 서북은 주운사(住雲寺), 남쪽은 운곡사(雲谷寺)  4개의 운() 자가 들어 있는 절이 있었는데, 명성이 영남에서 으뜸이었고, 뛰어나기는 고운사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찰 창건 당시에 풍수적 요소를 고려하였을 것이다.

고운사가 위치한 지형은 주봉(主峰)은 부수봉(負壽峰), 안대(安帶)는 광명봉(光明峰)이니  새재 이남의 명구(名區)라 하였으며, 우리나라 풍수의 비조(鼻祖) 도선국사는 연꽃이 반쯤 핀(芙蓉半開形) 형국이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1980년 관리하기 쉽도록 Y자형의 계곡을 메꾸었다. 1836년까지 계류의 남쪽보다 북쪽 지역에 많은 건물이 있었다. 가운루를 통하여 북쪽 우화루 방면으로 건넜을 것이다. 또한 가운루는 제철형(蹄鐵形, 말발굽 또는 U자 모양)으로 비어있는 서쪽을 비보하고 있다. 가운루 동쪽은 대부분의 누가 그렇듯이 벽을 두지 않으면서도 서쪽은 막았다.

등운산이 정상부만 둥근 돔 형태를 띠는 것은 기반암의 특성에서 비롯되었다. 산 정상부에는 중생대 백악기 침식과 풍화에 강한 불국사 관입암류인 규장암이 분포하며, 그 외 지역은 퇴적암인 점곡층이므로 산록부는 사면 경사가 완만한 경향을 보인다. 기반암의 차별 침식에 의하여 산록부와는 달리 둥근 돔 형태의 정상부가 남아 있는 것이다. 등운산의 기반암으로 적색 역암이 있다. 붉은 돌이 많이 있기에 이곳 면() 이름은 단촌(丹村)이다.

만덕당에서 앉아 등운산을 바라볼 때 더욱더 둥그스름하다. 봉우리가 연꽃잎을 닮았다. 천년 숲길을 걸으면서 봤을 터이지만 특별할 것 없이 고만고만하고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연이어 고운사를 에워싸고 있다. 연꽃잎에 해당할 산봉우리들이 사방에서 한 곳으로 모여들어, 연꽃이 반쯤 피어있는 모양새다. 꽃잎이 떨어져 나간 서쪽은 가운루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 때문에 위로 흘러가는 구름만 보일 뿐이다. 구름에 연꽃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듯하다.

진리를 찾아 떠난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우화소설어린 방랑자의 주인공이 바라보던 끝 없는 하늘이다. 구름은 하늘이 주는 최고의 선물. 때로는 거센 비와 난폭한 강풍을 동반하지만,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한 구름에서부터 조약돌 또는 거품, 안개, 얼룩무늬와 같은 다양한 표정을 지녔다. 그런가 하면 춤추는 듯 보이는 뭉게구름이 있고 하늘이란 캔버스를 다양한 색상으로 칠하기도 한다.

이제 절집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자. 몇 가지 관심 가질 특이한 점만 살펴보기로 하자. 고운사는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騰雲山)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이다. 지장보살 영험 성지로 한국 33 관음 성지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찰 내의 명부전은 사람이 죽은 뒤 심판받는 장소를 형상화한 곳으로써 지장보살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10 (十王)이 봉안되어 있다. 그 때문에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는 다녀왔는가?’하고 묻는다고 한다.

과거 대웅전이던 나한전 아래에는 고운사의 역사를 적은 사적비가 있다. 의상대사의 창건과 고운 최치원의 중창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나한전 옆 조실채 기둥의 나뭇결도 특이하다. 용틀임하면서 하늘로 오르는 용의 모습 같다. 창건연대가 오래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우화루 벽면의 호랑이 그림도 그렇다. 계단을 오르기 전 바위에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호랑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런 뒤 계단을 오르면서, 다시 계단을 다 오른 다음 호랑이를 바라보면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다. 다시점을 고려하여 그렸을 것이다. 조선 중기에 처음 그린 그림은 공양간 입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