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吳起)는 위나라 사람으로 병사를 다스리는 기술이 훌륭했다.
그는 일찍이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자에게 학문을 배우고 노(魯)나라의 임금을 섬겼다. 노나라에서는 그를 장수로 삼았다. 그는 군사를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러 공을 세웠다 하지만 자기를 비웃거나 거슬리는 사람을 30여명이나 죽이고 여자를 좋아하지만 용병술(用兵術)에는 그를 따를 자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부하병사와 고락을 같이하고 잠자리도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나누었다. 어느 날 병사 가운데 등창이 난 환자가 생기자 입으로 병사의 고름을 빨아내는 일도 서슴없이 하였다. 나라에서는 용병술이 뛰어난 오기를 서하(西河)고을의 태수로 삼았다. 곧 임금이 죽자 그 아들 중에 덕망이 높고 관후한 무후(武侯)를 섬겼다.
어느 때 무후는 오기와 함께 서하에 배를 띄우고 중류쯤 내려가다가 문득 오기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아름답도다. 이곳이야말로 나라의 보배로구려.” 무후의 말에 오기가 대답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님의 덕망 이옵고 아름다운 산하는 아닙니다. 산하로 예를 들자오면 옛날의 삼묘씨(三苗氏)는 동정호(洞庭湖)를 왼쪽에 끼고 팽려의 요새를 오른쪽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좋은 요새이옵니까? 그러나 삼묘씨는 덕과 뜻을 갈고 닦지 않아 다른 나라에 패하여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옛일을 보더라도 나라의 보배는 임금님의 덕망에 있는 것이지 험난한 지세와 아름다운 산하에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만약 임금께서 덕을 닦지 않으신다면 지금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무후는 오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는 서하를 다스려 고을 백성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오기를 제쳐두고 덕망과 인품이 뛰어난 전문(田文)을 재상으로 삼았다.
오기는 섭섭한 마음이 들어 재상 전문에게 물었다. “나라에 세운 공을 그대와 비교하고 싶은데 어떻소?” 하였다. 전문은 “좋소” 하고 쾌히 승낙하였다.
“삼군의 장수가 되어 병사들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기꺼이 죽게 하며, 적국이 감히 우리나라를 넘볼 수 없게 한 일에 그대와 나 가운데 누가 더 낫겠소, 내가 그대만 못하오? 벼슬아치를 다스리고 백성을 사랑하게 하며 나라의 창고를 채우게 하는 점에 있어서 그대와 나 가운데 누가 더 낫겠소, 내가 그대만 못하오? 서하를 지켜 진(晉)나라 군사가 감히 동쪽으로 오지 못하게 하고 이웃 나라를 복종케하는 점에 있어서 그대와 나 가운데 누가 더 낫겠소, 내가 그대만 못하오? 그런데도 그대의 벼슬이 나보다 높아졌으니 어찌된 일이오?”
오기의 말에 이번에는 재상 전문이 물었다.
“임금이 아직 어려서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들이 따르지 않으며 백성들도 나라를 믿지 않고 있소. 이런 때에 임금님 다음가는 재상 자리를 그대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오기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더니 힘없이 대답했다. “그대에게 맡기겠소.” 이에 전문은 “이제 내가 그대의 윗자리에 앉게 된 까닭을 아시겠소.” 하였다.
그제서야 오기는 전문보다 인격과 덕망을 갖추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위는 사기열전의 이야기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걸주(桀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백성을 잃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천하를 얻음에 길이 있으니 그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것이다. 백성을 얻음에 길이 있으니 그 마음을 얻으면 백성을 얻을 것이다. 마음을 얻음에 길이 있으니 원하는 바를 주어서 모이게 하고 싫어하는 바를 베풀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백성이 어진 임금에게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며 짐승이 들판으로 달리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이치이다.
옛날에도 학정(虐政)을 견디지 못하여 일어나는 민란이 있었다. 조선조의 순조(純祖) 11년에 국정의 부패에 불만을 품고 평안북도 가산(嘉山)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있었으며 조선조 말기의 전봉준이 전라도 고부(古阜)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백성의 고혈을 짜는 폭정에 반감을 품고 일어난 동학란(東學亂)도 있었다.
사람은 남녀노소 존비귀천(尊卑貴賤)을 가릴 것 없이 온량공검(溫良恭儉)의 처신으로 덕성을 품은 근엄한 표정이면 남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존경받을 것이다.
여기에 명언 한 수를 옮겨서 적어본다.
有福莫享盡 福盡身貧窮 복이 있다고 다 누리지 말라. 복이 다하면 빈곤이 찾아온다.
有勢莫使盡 勢盡寃相逢 세력이 있다고 다 부리지 말라. 세력이 다하면 원한 맺힌 사람을 만나게 된다.
福兮常自惜 勢兮常自恭 복이 있을 때는 항상 아껴서 쓰고 세력이 있을 때는 언제나 공손하라.
人生驕與侈 有始多無終 살아가면서 교만과 사치는 처음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이니라.
아! 세월은 무한한 시공(時空)의 순환에 따라 절서는 어김없이 가고 또 온다.
신축년 마지막 절기 대한(大寒)이 지나고 민족의 대명절 구정이요, 임인(壬寅)년의 첫 절기 입춘(立春)이 눈앞에 다가섰다. 흙에서 태어나고 흙에서 생활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약삭빠른 계산도 할 줄 모르고 순박하게 살며 자연의 깊은 이치에 순종하고 허물없이 살다가 흙 속으로 돌아간 순진한 친구가 하나 둘씩 먼 길을 떠난다. 마음이 허전할 뿐이다. 누구나 충직한 사람이면 느낄 수 있는 세간의 일들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묶은 헌디 손톱으로 긁어 그 여독으로 덧나고 고름까지 나오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으련만? 지난해는 우직하고 성실한 소의 해이다. 달리는 말은 넘어지는 실수가 있지만 느리고 굼띤소는 무거운 짐을 등에다 얹고 험한 산길을 걸어도 실수가 없다.
다가오는 임인(壬寅)년은 범(호랑이)의 해이다. 그는 백수지왕(百獸之王)이요, 산중호걸(山中豪傑) 또는 산군(山君)이라 말하는 영물이다. 그는 일화도 많다. 범 가는데 바람 간다. 범도 죽을 때는 제굴에서 죽는다. 범 본 여편네 창구멍 막듯 한다.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범 없는 골에 승냥이가 회를 친다. 범은 보니 무섭고 가죽은 탐이 난다. 범 잡아먹는 담비가 있다.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범보고 날고기 지켜 달라한다. 등등이 있다.
옛날에는 맹호출림(猛虎出林)의 그림을 출입문 위에 게액하면 집안의 재액을 막는다고 하였는데 올해의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그 힘찬 기운으로 만연하고 있는 감염질환(感染疾患)을 물리치고 아름다운 강산에서 광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한 해를 보내면서 성당(盛唐)의 고적(高適) 시인의 시를 옮겨 적는다.
旅館寒燈獨不眠 여관방 쓸쓸한 등불 잠 못 이루니
客心何事轉悽然 나그네 마음 무슨 일로 이같이 서글플까
故鄕今夜思千里 오늘밤 생각하니 고향은 천리 먼 길
霜鬂明朝又一年 내일 아침이면 새해 맞으니 수염만 희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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